민본(民本) 사상을 논할 때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편을 든다.
기원전 4세기, 맹자는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며 자신의 철학을 설파했다. 위나라의 도읍 대량(大梁)에 이르러 혜왕을 만났을 때, 왕이 먼저 말을 꺼낸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내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전국시대의 군주로서는 자연스러운 물음이다. 부국강병은 생존의 조건이었고, 양혜왕은 그 조건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맹자의 이렇게 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반드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이 이익을 물으면 대신들도 이익을 물을 것이고, 백성들도 이익을 물을 것입니다. 위아래가 모두 이익만을 취하려 든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맹자』의 첫 문장이다.
이익(利)을 거부하고 인의(仁義)를 내세운 이 발언은 단순한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었다. 윗사람이 이익을 좇으면 아랫사람도 이익을 좇고, 그 끝은 군주를 시해하는 신하까지 나온다고 맹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맹자가 말한 왕도(王道)정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는 추상적 덕목만 늘어놓지 않았다. 같은 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勿奪其時(물탈기시) - 때를 빼앗지 말라.
"백 묘의 밭에 농사지을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러 가족이 굶지 않을 수 있다(百畝之田,勿奪其時,數口之家可以無飢矣)."
씨 뿌리고 거둘 시기를 왕이 함부로 막지 말라는 뜻이다. 부역이나 전쟁으로 백성의 농사철을 가로채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맹자가 강조한 왕도정치의 핵심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가볍게 하고 농사를 때에 맞게 짓게 하는 것이다. 또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정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각자의 때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능력이 있어도 헛힘을 쓰게되고, 때를 제대로 읽으면 작은 노력으로 생각보다 큰 무게를 움직인다. 맹자가 왕에게 한 말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유다.
문제는 "때를 빼앗는" 주체가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가 자신의 때를 빼앗는다. 미루고, 재고, 눈치 보다가 시간만 속절없이 흐른다. 왕이 백성의 농사철을 빼앗듯, 우리도 스스로의 시기를 망설임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계승·발전시켰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진심 하편(盡心下)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民爲貴), 사직이 그 다음이며(社稷次之), 군주는 가장 가볍다(君爲輕)." 이른바 민귀군경(民貴君輕)이다.
군주가 존재하기 때문에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있기 때문에 군주가 존재한다는 논리다.
6월 3일, 전국에서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 지방의회 의원을 새로 뽑는다. 출마를 선언한 이들은 저마다 공약을 들고 유권자 앞에 선다. 그런데 맹자가 양혜왕에게 던진 그 첫 질문은 오늘의 후보들에게도 유효하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익인가, 인의인가.
백성의 때를 빼앗지 않는 것. 그것이 왕도정치의 출발이었다. 주민의 일상을 뒤흔드는 무리한 개발, 임기 내 실적을 위해 강행하는 사업,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허한 약속들 -그 모두가 현대판 奪其時(탈기시)다.
2,300여 년 전 맹자의 경고가 현재도 유효한 것은, 권력의 본질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