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법률사무원

법률사무원(사무장)으로 일자리 찾기나 이직을 하는 일은 예전보다 분명 더 어려워졌다. 나는 인생의 거의 절반을 이 일을 하며 보냈고, 2000년대 초반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때는 경력만 어느 정도 쌓이면 취업이나 이직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변호사 사무실의 구조 자체가 사무장을 중심에 두고 짜여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변호사가 개업을 하거나 로펌이 새로 만들어지면 제일 먼저 사무장과 송무업무를 맡는 송무지원실부터 꾸렸다. 변호사가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법률사무원이었고, 새로 생긴 로펌의 첫 번째 스태프 부서도 대부분 송무지원실이었다. 서초동의 작은 사무실들에서는 사무장들이 간단한 서면을 직접 썼고, 이론에 밝은 분들은 소장이나 가처분 신청서 초안까지 작성했다. 경리를 겸하는 여성 사무원이 그 내용을 타이핑하고, 변호사가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면 한 건의 서면이 완성됐다. 여유가 있는 사무실은 외근을 담당하는 남자 사무원을 따로 두어 법원 접수와 송달을 맡겼고, 그가 운전기사 역할까지 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 역시 변호사 5~6명이 있는 소형 법인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어느 시점에 4대 로펌 중 한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 선배들은 “대형로펌에 가면 사무장으로서 배울 게 없다, 서초동에서 자리를 잡는 게 낫다”라고 말리기도 했다. 실제로 대형 로펌에서는 일찌감치 법률사무원의 역할을 변호사 업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세분화하고 시스템화해 두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서면을 전국 법원에 접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변호사가 시간을 들이기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집행과 비송 업무를 법률사무원이 나눠 맡아 처리하는 구조였다. 서면은 변호사가 직접 작성하고 담당 비서가 이를 정리해 완성하면, 송무지원실 법률사무원이 접수와 관리, 진행을 맡는 식의 유기적인 분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변호사 수가 급격히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소위 법률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변호사들은 직접, 혹은 사무장을 통해, 또 마케팅 회사와 계약을 맺어 블로그와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글들 안에는 집행, 비송, 공탁처럼 원래 법률사무원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실무 노하우가 그대로 담겼다. 한때는 사무실 안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익혀야 했던 기술들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되어 버렸다. 법률사무원의 시장은 어느새 인터넷과의 전쟁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전자소송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예전처럼 사무원이 발품을 팔아야만 처리할 수 있던 업무의 상당 부분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갔다. 화면 앞에서 사건을 접수하고 서류를 송달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법원을 오가며 몸으로 익히던 일은 줄어들었다. 서초동에서 노련한 선배들이 신청서를 쓰고 소장 초안을 만들던 일도 이제는 점점 AI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과거에는 사람의 경험과 감으로 처리하던 일들이, 점점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의 일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서초동에서 일자리를 구한 선배들이 예전과는 다른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정적인 대형 로펌에 들어와 자리 잡고 정년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 직업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더 배워야 하고, 어디까지 변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곧 50이 되는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을 법률사무원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 업이 어떻게 변할지, 지금 내가 하는 예상이 맞을지 틀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이미 여러 번 뼈저리게 배웠다. 환경이 바뀌면, 결국 그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발품을 팔 수는 없어도, 시스템과 전자소송, 그리고 AI까지 내 일의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음 변화를 준비하는 일이 다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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