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 간 분쟁이 발생하면

팀장으로 오래 있다 보면, 제일 힘든 순간이 있다.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서로 말을 끊기 시작하는 그때다. 그럴 때 사람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같은 반응을 보인다.


“대체 누가 먼저 잘못한 거야?”

나 역시 한동안은 판사처럼 움직였다. 한 사람씩 불러서 말을 듣고, 정리해서 “여기서는 네가 과했다”, “이 부분은 네가 잘못했다”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판결이 내려간 뒤에 공기가 풀리기보다는 더 차갑게 얼어붙는 날이 많았다. 말로는 “알겠습니다”라고 하지만,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재판이 아니라는 거다. 팀장이 손에 쥔 건 판결문이 아니라, 막혀버린 교차로의 신호를 다시 켜는 스위치에 더 가깝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먼저 가르는 대신, 한동안 엉켜 있던 말과 감정을 조금씩 풀어 주는 일. 양쪽 얘기를 다 들되, 어느 쪽 편도 성급히 들지 않고, 일이 막히게 만든 애매한 경계를 다시 그어 주는 사람이 팀장이어야 한다. 신호가 한 번 정리되어야, 상한 마음도 가라앉고, 멈춰 서 있던 팀이 겨우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건드려야 하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감정이었다.


싸움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규정이나 사규보다 ‘내가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훨씬 더 현실에 가깝다. 그런데 그 앞에서 “일단 팩트부터 말해 봐요”라고 밀어붙이면, 그 말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잠깐 치워 두라”는 요구로 들리기 쉽다.


오히려 이렇게 시작하는 편이 낫다. “너는 이 상황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낀 거구나.” “넌 네가 계속 뒤늦게 통보받는다고 느낀 거구나.” 감정에 제대로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한 번 꺼진다. 그다음에야 사건의 순서를 차분히 되짚어도 늦지 않다. 팀장은 차가운 계산기라기보다, 팀원들이 쏟아낸 억울함이 고여 악취가 나지 않게 잠깐 받아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는 배수로에 가깝다.


우리는 보통 갈등이 생기면 성격부터 탓한다.

“쟤랑 나는 원래 안 맞아요.”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이 부딪힌 이유가 성격 말고 다른 데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일하는 방식과 기준에 대해 제대로 합의를 안 한 채로 같이 달리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자료 좀 빨리 줘”라고 말하고, 상대는 사흘 뒤에 메일을 보낸다. 요구한 쪽은 약속을 어겼다고 느끼고, 보낸 쪽은 “그래도 준 건데 왜 화를 내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둘 중 하나의 인성이 아니라, ‘빨리’라는 말이 서로에게 어떤 시간을 뜻하는지 미리 맞춰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엔, 갈등의 상당수는 사람의 악의보다 그런 빈칸에서 훨씬 더 자주 튀어나온다.


그래서 팀장이 할 일은 “이제 그만 싸우자”라고 야단치는 게 아니다.

앞으로 헷갈리지 않게 기준을 한 번 같이 정해 보는 일에 가깝다. “우리 팀에서 ‘빨리’라는 말은 요청 후 1시간 안이라는 뜻으로 하자.” “보고는 말로만 하지 말고, 최소한 메신저에 한 줄은 남기자.”처럼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문장으로 정리된 규칙이 생기면, 감정의 화살이 서로를 향해만 날아다니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고쳐야 할 ‘방법’과 ‘시스템’ 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사람을 통째로 고쳐 쓰려 하기보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틀을 조금씩 손보는 쪽이 현실적으로 훨씬 덜 지친다.


과거의 잘잘못을 캐묻는 질문은 갈등을 쉽게 깊게 만든다.

“그래서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낸 거야?”, “처음에 화낸 쪽이 누구야?”라는 식의 질문은 변명과 재판을 다시 불러온다. 팀장은 법관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 둘이 같은 프로젝트에서 다시 마주 앉을 수 있게 판을 설계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갈등이 한 번 터지면,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도 다시 같이 일하려면, 서로에게 어떤 게 필요할까요?”

논점이 “누가 틀렸는지”에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로 옮겨가는 순간, 대화의 방향이 조금씩 따라 움직인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 팀장이 정답을 대신 정해 주는 방식으로는 갈등이 오래 정리되지 않는다는 거다.


“앞으로는 중요한 메일에 서로를 꼭 참조에 넣자”, “회의 내용은 당일 안에 짧게라도 텍스트로 남기자” 같은 약속은 되도록 당사자들이 직접 입 밖으로 꺼내게 해야 한다. 팀장은 그 약속을 정리해 주고, 시간이 지나도 잘 지켜지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증인에 가까운 자리에 서는 편이 낫다.

여기서 말하는 중립도 쉽지 않다. “난 누구 편도 안 들어요”를 반복한다고 중립이 되는 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는 태도는 중립이라기보다 방관에 더 가깝다. 내가 믿는 진짜 중립은 ‘팀의 목표’라는 세 번째 편에 서는 일이다.


“A가 옳고 B가 틀렸다”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끝내려면 A의 방식은 속도를 살려주고, B의 방식은 품질을 끌어올려 준다”라고 말하는 순간, 초점은 사람에게서 일로 옮겨 간다. 팀장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사람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맡는다.


“저 사람은 너무 답답해요”라는 불만을 “저 동료는 절차와 검토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야”라는 문장으로 바꿔 주는 역할이다. 교차로에 신호가 정리되면 차가 다시 움직이듯, 정리된 언어와 다시 맞춘 목표는 멈춰 서 있던 팀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준다. 갈등은 그때서야 비로소 사건 하나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방식을 한 칸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전 02화반평생 법률사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