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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May 21. 2024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괜찮지 않았으니까.

"너 정말 괜찮았었어?"

"너 정말 아무렇지 않았었어?"


진짜 괜찮아서 괜찮았던 건지,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던 건지 어릴 적의 나에게 묻고 싶다. 사십 대의 나로 십 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괜찮지 않았을 것 같은데 분명 그때의 나는 괜찮다고 느꼈다. 왜 부모님께 떼 한번 쓰지 않았는지, 왜 울고불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는지 나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고집과 온갖 생떼가 말도 못하게 많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 날 것의 모습일 텐데 왜 어릴 적의 나는 늘 조용하고 고요한 세상에서 살아갔을까.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빠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정답은 미궁 속에 있다.




돌이켜보면 분명 괜찮지 않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 이 학원 저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나를 위한 사랑인 걸 알았으니까. 술 먹고 새벽에 들어와 온 가족을 깨우는 아빠에게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우리를 사랑해서 그러셨다는 걸 알았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해외 파견을 갔을 때도 늘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야했고 괜찮아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진짜 괜찮아져 버렸다. 결혼해서 어렵고 어머님의 말에 상처를 받아도 어른들은 원래 그러시지, 하며 내 마음을 무시하고 괜찮은 척 살았다. 누가 나를 부담스럽게 하거나 힘들게 해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약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더 밝게 웃고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내 마음의 강은 썩어 있었다. 괜찮은 척했던 시간과 괜찮다고 여겼던 시간이 오물이 되어 시커먼 강이 되어 있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밖으로 버려야 했던 감정들을 안으로 삼켰던 대가는 결국 마음의 아픔으로 돌아왔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마음,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다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 때문에 내 마음을 썩어가도록 내팽개 쳐두었다. 착한 사람, 괜찮은 사람, 흠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선택했던 행동들이 나 자신에게는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행동이었다.


마음 불편한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서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만 참으면 되니까.'

'내가 아무 말 안 하면 되니까.'

'나는 조용히 살면 되니까.'

하면서 말이다.


"나 괜찮지 않아."라는 말이 얼마나 필요한 말이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 말인지 이제야 배웠다. 사람들의 비난과 실망이 두려워하지 못했던 말이다. 바르고 착하고 모범적이고 씩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딱하고 애처롭다. 내면 아이 따위는 없지만 그냥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까지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어차피 과거의 나는 이제 없고 중요한 건 현재다. 마흔부터는 내 마음에 가장 솔직해지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런 노력을 해주는 내가 고맙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까지는 어려워도 괜찮지 않은 내 마음을 알고 다른 선택을 해주니 고맙다. 견디게 하지 않고 괜찮다고 자위하지도 않아서 고맙다. 힘들면 힘들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그런 내 마음을 들어줘서 고맙다. 


아마도 괜찮은 척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괜찮은 척 살았는데 모두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이는 건 불가능한가보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게 더 용기 있는 삶인 것 같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아야 그게 건강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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