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Jul 11. 2024

마음의 곳간은 넉넉하십니까?

우리는 부자다.

'가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넉넉하다는 건 어느 정도일까. 모자라지 않고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여유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결국 가난의 정의는 단순히 먹고 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넘어 마음의 상태까지도 연관이 있다.


예전엔 분명 가난했다. 학생회비를 밀릴 때도 있었고, 급식비가 없을 때도 있었다.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문제집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돈이 없었던 거지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바라는 것도 없었고 크게 모자란다는 생각도 없으니, 돈이 없어도 그 상황 안에서 잘 살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는 게 비슷비슷했다.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니, 마음 불편해질 일이 없었다.


지금은 부자가 되고 싶다. 왜냐하면 자주 가난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결혼한 이후로는 자주 가난하다고 느껴졌다. 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예전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어디를 가나 내가 가장 가난한 사람 같았다. 마음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해진 이유는 비교 때문이다. 대학부터 편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취업과 결혼 이후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예전에는 안 만나면 어떻게 사는지 모르니 괴로운 것도 없었다. 요즘은 한 번 인연 맺으면 십 년을 안 만나도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고 산다. SNS 덕분이다. 온라인을 통해 강제로 접견을 해야하니 부럽고 씁쓸한 마음도 자주 만나야 한다. 근래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보며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게 정말 우습지만 말이다.


모두 다 잘 사는 세상이 와버렸다. 분명 예전 시절에 비해 모두가 잘 먹고 잘산다. 우리 모두 찢어지게 가난해질 수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동시에 부자가 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자신의 과거보다 부자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기지 못한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에 놀러 가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더, 지금 보다 더, 그들보다 더. 종점도 없는 '더. 더. 더'의 열차에 탑승해 조금이라도 속력을 내려고 바쁘다. 그 열차에는 만족이라는 정거장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더더더의 열차는 무엇을 향해 달리는 걸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것은 가난인데,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것은 부자라 한다. 결국 내가 내 살림살이 넉넉하다고 여길 수 있으면 지금, 이 순간 곧장 부자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넉넉하다고 여길 것인지 말 것인지 욕망과 만족 사이를 오가는 타협의 문제이고, 부자라고 여길 것인지 말 것인지 과거와의 비교와 타인과의 비교 사이를 오가는 중심의 문제이다.


먹고 싶은 것 충분히 먹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사는 데 마음 살림살이가 비어있으니 자꾸 더 가난해진다. 재산이 얼마인지 형편이 어떤지 상관없이 이제는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로 살아보자. 빈 몸으로 와서 이만큼 얻었으니, 부자라고 말하며 살자. 이미 가진 것도 많고, 앞으로 가질 것도 많으니,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부자다.

작가의 이전글 노랑을 품은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