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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10. 2024

노랑을 품은 아이

수많은 색깔 중에 너를

새하얀 글쓰기 노트북 옆에는 샛노란 글쓰기 노트가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색. 곁에 두기만 해도 힘을 주는 색. 노란색은 나에게 색 이상의 무엇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노란색을 사랑했다. 좋아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마음이다. 분명 사랑했다. 노란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동그랗고 웃는 얼굴의 스마일. 지금도 노란 스마일만 보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물건을 고를 때도 무조건 기준은 노란색이었다. 옷을 고를 때도 무조건 노란색이었다. 디자인보다 색깔이 중요했고, 무엇인지보다 노란색인지가 중요했다. 


6학년 소풍 사진을 보면 대체 저게 무슨 패션인가 싶은 복장이다. 노란 멜빵바지에 노란 야구점퍼에 노란 모자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꽃도 노란 프리지아, 좋아하는 새는 노란 카나리아였다. 컴퓨터를 처음 샀던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쓴 이메일 주소에도 앞에 yellow가 들어간다. 



노란색은 빛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색은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노란색은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색은 힘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색은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지금 사용하는 '밝음'이라는 닉네임도 노란색에 대한 사랑이 연장된 것 같다. 지금은 어린 옛날처럼 집착하듯 좋아하지는 않는다. 노란색에 대한 마음이 식은 건지 생각해 보니 그렇지는 않다. 자아를 만들어가고 사회화 되어가면서 어느덧 노란색은 밖이 아닌 내 안에만 살게 두었다.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에 노랑이라는 색은 부담스러운 색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눈에 띄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눈에 띄는 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관념이 생겼다. 이제 내 옷장의 옷들은 대부분 베이지색이다. 튀는 것보다 묻히는 게 낫다는 생각.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경험, 혼자 다른 것보다 사람들과 비슷하게 섞이는 게 좋다는 마음. 이런저런 삶의 스토리들이 쌓여 나의 노랑은 어느덧 밝은 빛을 잃은 베이지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나처럼.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걸 잘못 배운 것 같다. 활기차고 단순하고 밝은 것들은 아이들에게만 어울린다는 착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다 어둡고 미지근한 것들에 더 익숙해져 버렸다. 노랑은 낯선 색이 되어버렸고 나와 동일시했던 밝음은 이제 가져서는 안 될 것을 탐내는 욕심이 되어버렸다.


푸른 생명의 빛 속에 숨어 있는 작고 노란 민들레, 환한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아이들을 태운 노란 버스, 탱탱한 흰자 속에 고고하게 숨어 있는 포슬포슬 계란 노른자까지. 노랑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여전히 노랑은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착각이다.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도 제약도 없다. 사랑은 자유롭다. 나에게 노랑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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