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는 어디에 살고 있나
요즘 신호등이 친절해졌다. 초록 불일 때 건널 수 있는 잔여 초를 알려주는 건 물론이거니와 빨간불일 땐 언제쯤 바뀌는지도 숫자로 알려준다. 길을 건너려고 서 있으면 바뀌는 숫자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면 된다. 10, 9, 8, 7 바뀌는 숫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명상하는 기분도 든다. 바뀐 신호등 시스템이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대단한 발전 같기도 하다. 작은 변화 하나로 우리를 조바심에서 구출해 주었으니까. 단순한 아이디어가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시스템으로 변모하기까지는 분명 사람들의 불편이 한몫했을 것이다. 모든 편의는 불편으로부터 시작되니까.
인간의 인내심이 짧다는 걸 확인하는 몇몇 경우가 있다.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 버스 기다릴 때, 화장실에서 줄 설 때.
실제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텐데 당장 채워져야 하는 욕구 앞에서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참 신기한 건, 시간 안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신호등 바뀌는 시간도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그대로인데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언제쯤 오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기다림이 되었다. 지겨운 느낌에서 충분한 여유로 바뀌었다. 잠시 잠깐의 기다림이더라도 예측불가능한 미래 앞에서는 답답함과 조바심을 만들지만, 예측할 수 있는 미래 앞에서는 저절로 마음의 안정을 취하게 되나보다.
세상이 편리해져서 좋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듯 그 좋은 것 뒤에 따라오는 좋아져서 안 좋은 것들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 기다림이 당연해지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을까? 1분 1초 뒤의 인생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인데 우린 얼마나 모호함 속에 자신을 던져낼 수 있을까?
편리만 좇다 보면 지극히 사소한 불편에도 큰 불편을 느끼게 된다. 효율만 좇다 보면 우리를 살리는 무용한 것들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된다. 살기 좋아질수록 불편한 것들을 일부러 찾아다녀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 가던 길로 다녀보기, 낯선 곳 낯선 이들 만나기, 모르는 분야의 책이나 활동 도전하기 같은 것들 말이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 만족이라는 꿈같은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불편이 해소되면 또 다른 불편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인간의 만족은 세상의 변화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변화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신호등을 만나면 의미 없는 시간과 조우하며 즐겨보아야겠다. 하늘도 보고, 강아지도 보고, 사람들의 표정도 바라보면서 내 안에 느긋함을 만나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빨간불은 어차피 바뀔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