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마음을 채우는가
나의 맛집은 숲에 있다.
동네에 유명한 칼국숫집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뜨거운 칼국수를 먹으려고 기다림을 자처한다. 몇 년 전에 생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졌다. 동죽조개를 넣어서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긴 하지만 찾아와서 기다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비가 오나 땡볕이나 가게 앞은 북적거린다. 그 칼국숫집 덕분에 바로 옆에 카페도 두 개나 생겼다. 사람들이 물밀듯 찾아오는 집이지만 나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다. 그것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그때야 오늘은 칼국수나 먹어볼까 생각한다. 결국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거다.
칼국숫집에서 세 정거장 정도 더 지나면 거기에는 또 유명한 돼지국밥집이 있다. 거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었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 많은 맛집이다. 부산 여행 오면 꼭 먹어보고 싶어 한다는 맛집인데 나는 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입맛이 아니어서. 더 맛있는 집은 옆 동네 구석에 있다. 영원히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이 있는 맛집이라 아쉬움이 없어서 그런 건가, 내가 배가 부른 건가, 헷갈린다. 지인이 극찬한 오마카세 집도 다녀왔는데 나는 별로였다. 미식가도 아닌데 아무래도 나만의 입맛이 따로 있나 보다. 어릴 때 아빠가 고급 외제 쿠키를 사와도 심드렁했다. 솔직히 말하면 버터 때문에 속이 느글거려서 맛있기는커녕 줘도 먹기 싫었다. 내 입에는 자갈치와 오징어집 봉지 과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늘 입이 싸다고 구박받았다. 좋은 거 줘도 못 먹는다고.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내 입맛이 아닌 걸 어쩌겠는가.
음식에 특별한 집착이 없다. 사실 이걸 먹어도 그만, 저걸 먹어도 그만이다. 먹는 즐거움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꽤 유용한 요소인 것 같은데 나는 그걸 누리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니 꼭 그걸 먹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일 이해 안 되는 게 맛집에 줄 서서 먹는 사람들이다. 뭘 먹든 그 즐거움은 한때일 뿐일 텐데 저렇게까지 기다려서 먹는 투지에 존경심까지 생긴다. 먹는 것보다 에너지 보유가 중요한 나는 언제나 쿨하게 포기한다. 포기는 세상에서 제일 쉽다.
가끔은 맛있는 음식 하나로 세상 다 가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널렸고 이 음식 저 음식 먹으면서 즐거움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다. 알고 보면 사람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으며 그 즐거움으로 마음을 채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열량은 한정적이고 그건 사실 몇 가지 간단한 식재료들로 금방 채워진다. 결국 식사라는 건 음식 섭취 이상의 무엇이라는 거다. 다운되었던 기분이 살아나고, 우울했던 기분이 기쁨으로 차오르는 순간. 맛있는 음식이 몸으로 들어가 나와 공명할 때 잡생각은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 내 행복감이 나의 전부가 된다. 그러한 순간은 원래의 찬란한 나로 돌아가는 순간이 된다. 근심과 걱정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 쾌활함 편안함이 가득한 나. 그것이 우리의 본질일 테니까.
미각의 즐거움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으로 채우면 된다. 맛집 탐방 대신 자연 탐방을 하며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비 오고 습한 날이었지만 오늘도 걸으며 자연들과 공명해 본다.
"아, 내가 생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