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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ug 12. 2024

고민의 무쓸모

고민하는 대신 지금을 살기

"요즘 고민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분명 별다른 고민 없이 산다고 생각했다. 요즘 고민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보니 고민거리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웠다. 어이가 없었다. 나의 진로는 여전히 고민이다. 아직 안정적으로 잡히지 않는 가계 관리도 고민이다. 애들을 이렇게 두어도 괜찮을지도 고민이고, 왜 예전보다 덜 먹고 더 운동하는데도 몸뚱아리는 미동도 없는지 고민이다.


어떤 고민이 있는지 찾자면 무한대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 찾기 놀이는 여기서 관둔다. 고민거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제는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할 필요 없는 걸 고민하거나 고민만 하는 게 문제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무쓸모의 고민을 이토록 지독하게 애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나 생각해 보자.


 고민하면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노력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착각이다. 궁리해야 할 일에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과 궁리는 엄연히 다르다. 궁리는 감정은 분리하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지성은 없이 감정으로 애만 태우는 게 고민이다. 괴로울 필요가 없는 일에 괴로움을 안고 고민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짧은 인생사에서 소득 없는 행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고민을 안고 산다. 아무래도 애초에 세상살이를 잘못 배운 것 같다. 인생을 즐기면 안 되고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잘 살려면 고민하고 걱정하고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배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겠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또 하나는 가진 것을 잃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원하는 걸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거나 나락으로 갈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래저래 전전긍긍의 삶이다.


정작 이 세상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인간만이 인간의 관념으로 세상살이의 법도를 만들어냈다. 이래야 되고 저러면 안되고. 세상살이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만든 것이다. 그것을 지키는 자는 성공을 할 것이고 지키지 않으면 실패자가 되는 양 말이다.


자연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세상살이에 대해 한 단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순환'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무엇이 있거나 어떤 것만이 좋다는 기준이 없다. 어떠한 장면에도 판단 없이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저런 일이 일어날 뿐이다. 좋고 나쁨이라는 단어는 그 속에 없다. 그냥 순환할 뿐이다. 찬란한 여름은 좋은 것이고, 메마른 겨울은 나쁜 것이라 하지 않는다. 그냥 계속 흐를 뿐이고 변모할 뿐이다.




내 고민의 근원을 보면 문제가 보인다.


"좋은 직업을 선택해서 잘 살아야 한다."

"돈을 모으고 부족함 없이 살아야 한다."

"애들을 잘 키워야 한다."

"날씬하고 건강해야 한다."


자연의 세상살이에 빗대어보면 인간의 세상살이는 억지스럽다.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순환하지 않으려 한다. 잘 되기만을 바라고 실패와 낙오는 없길 바란다. 자신을 끊임없이 지키려 하고, 변함없이 영원하려고 한다. 언제나 찬란한 여름이기만을 바라고 시드는 겨울은 거부한다. 고민과 괴로움의 원인은 이곳에 있어 보인다.


조금 잘 되면 기뻤다가 조금 안 되면 슬펐다가. 자연은 이런 우릴 보며, 얼마나 애처로워할까. 생각과 감정의 노예가 따로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면 모든 게 축복이다. 맨몸으로 와놓고는 지금 가진 것들은 원래 있었던 것처럼 모두 하찮아졌다. 욕심꾸러기 아닌 사람이 없다. 다 버리고 다 내어놓을 순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만 지금 가진 것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보인다. 집착없이 모든 것이 감사할테니까.




태어났다면 모두 죽음을 선물 받아 태어난다. 순환이다. 순환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다음의 생명들을 위해 계속해서 순환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때가 있다. 나의 생이라는 유통기한을 받고 태어났다. 그 기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에 집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 흐름을 타고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순환의 선물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하는 웬만한 고민은 다 헛짓거리다. 변하는 것을 잡으려 하고, 지킬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고, 가질 수 없는 것까지 가지려 하면서 말이다.


진로 걱정 붙들고 있을 시간에 오늘 마음에서 일어난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기. 아이들 교육 걱정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눈 맞추며 웃어주기. 체중계 숫자랑 씨름할 시간에 산책이라도 한 번 더 나가기. 고민 대신 진짜 해야 할 일들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지도 않는 미래에 가 있지도 말고, 그냥 지금 여기를 살기로 한다. 쓸데없는 고민 놀이에 버리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살고 싶었던 시간이었음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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