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Aug 09. 2024

인간관계 레시피

우리 함께 존중하며 살아요. 잠깐이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인간관계. 그 관계의 첫 시작은 가족이다. 가족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맺는 관계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만나게 되는 첫 사람이 부모, 특히 엄마다. 그래서 모두의 첫사랑은 엄마다. 나를 생존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준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통해 사랑도 배우고, 엄마를 통해 두려움도 배운다. 사랑이 있는 곳에 나의 생존이 있었고, 나를 생존하게 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곧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도 두려움도 엄마와의 기억이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현재의 관계에도 철저히 영향을 미친다.


엄마의 사랑은 철저한 희생과 헌신이었다. 투정이나 부정적인 말 한마디 없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매일 좋은 옷과 음식, 좋은 교육을 제공했다. 힘들어도 그것을 다 해내야 했다. 그래야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고 그게 관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상대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썼고 상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참았다. 착한 딸이 되는 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었고,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배운 인간관계 방법이었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딸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까지 너무 많이 주고 잘되기를 기대했다. 딸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싫은 내색 없이 모든 걸 엄마에게 맞추고 살았다. 각자의 관계 방식이었다.




부모를 통해 익히게 된 관계 방식은 친구 관계, 사회관계에도 동일하게 쓰였다. 내가 어떤 관계 방식을 사용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았던 결과는 사랑이 아닌 상처였다.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인내했던 시간은 나를 학대하는 시간이 되었고, 힘든 마음을 참고 참은 대가는 결국 부정적 감정의 폭발이었다. 노력한 관계일수록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는 것으로 단락되었다.


수많은 관계를 거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삶을 배우고 나를 배웠다. 사람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계를 맺는 방식도 관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모두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란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이 진실이기에 그 다름과 어떻게 잘 살아가느냐를 탐구하는 것이 각자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존중'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존중 없이는 배려도 이해도 어려워진다. 존중은 내가 내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것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존중을 실현하는 바탕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과 기대를 품고 있고 그래서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인간관계가 폭력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나라는 사람은 뒷전으로 둔 채 사랑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그 상대에게 맞추어 희생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인간 대 인간이라는 대등한 위치이며, 거기서 피어나는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나도 뚜렷이 있어야 하고, 타인도 뚜렷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존중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각자가 실현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내 마음을 투사한다. 나의 기대, 결점, 부정성 등. 타자는 언제나 나를 뚜렷하게 만드는 대상일 뿐이다.  내 생각의 프레임, 내 마음의 거울을 통해 그 사람을 볼 뿐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알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있는 그대로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의 관계이다.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는 내가 내 마음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저 존재는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 때문에 힘들어한다. 인간관계의 부정성만 보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는 이런 관계도 있고 저런 관계도 있을 뿐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게 아니다. 


관계라는 것을 내가 가진 걸 볼 수 있게 하는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지금껏 생존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관계는 피해야 할 고통도 스트레스받는 혐오물도 아니며 그저 이 세상이라는 것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들과의 만남일 뿐이다. 나와 다른 타자가 있어야 나라는 걸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나를 존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짧은 찰나의 인생 함께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생에 만났다면 모두 인연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흔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