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것들의 특별함
적당한 키, 적당한 얼굴, 적당한 성격, 적당한 살림살이. 적당한 행복.
눈에 띄지 않고 특별한 것 없는 흔한 사람.
나는 적당한 것들만 가진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이름까지도 흔해서 언제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모래에 새긴 글자처럼 쉽게 사라졌다.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나 없어서 집에 큰일이 나거나,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그 사람이 못 살지는 않았다. 흔한 것들은 무용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대상들. 흔한 것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했고,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았다.
너무 흔한 나라서 특별한 것들이 좋았다. 특별한 사람, 특별한 교육, 특별한 기분, 특별한 경험. 특별한 것들과 만날 때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친구, 성공한 친척, 능력자 지인. 남들이 안 하는 교육.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특별한 것이 좋았다. 그런 특별한 것들과 연결된 내가 좋았다. 오만가지 중에 그저 한가지일 뿐인 사람이 될까 봐. 나의 존재성이 소멸해 버릴까 봐. 이미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상태를 멸시하며 살았다.
삼 년 전에 커피잔 하나를 샀다. 아름다운 소녀의 하얀 주름 원피스를 닮은 물결무늬 잔이었다. 그 특별한 잔은 몇 달에 한 번 쓰일까 말까 한다. 쉽게 쓰이지 못한다. 특별하게 여기는 잔이기 때문이다. 특별해서 좋지만 자주 만날 수가 없다 그것을 해칠까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매일 물 마실 때 쓰는 투명 유리컵은 흔하디흔한 물잔이다. 같은 모양으로 여러 개 있으니 유일한 컵도 아니다. 이 컵이 그 컵인지 그 컵이 이 컵인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만나며, 하루 종일 나의 목을 축이기 위해 일해준다. 대체 어떤 잔이 특별한 잔일까?
흔하지 않은 것들의 특별함이 있듯, 흔한 것들의 특별함도 있어 보인다. 흔한 것들 장벽은 낮다. 흔한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흔한 물건들은 쉽게 쓰일 수 있다.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건 따뜻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을 쉽게 열어주니까 말이다.
이 세상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흔한 사람들이 굴려 가고 있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해 보일 수 있는 것도 하얀 바탕처럼 흔한 사람들이 제 몫을 하고 살아가 주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들만 모인 곳에서 그 특별한 것이 특별한 것일 수는 없을 테니까. 흔한 건 흔할 뿐이고, 특별한 건 특별할 뿐인데 자꾸 흔한 건 좋지 않고 특별한 건 좋은 거라는 상을 씌운다. 세상에 좋고 나쁜 게 어디 있다고. 나의 유리컵처럼 흔해서 좋은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흔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나도 그런 흔한 사람의 일원으로 한몫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