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
집을 나설 때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은 바로 '가방'. 검은색의 작은 백팩. 일 년 전에 구입했는데 매일 그 가방만 들고 다닌다.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가방 저 가방 바꿔 들고 다닐 부지런함이 없어서이고 가방을 바꾸면 립밤이나 지갑 등 꼭 물건 하나를 빼놓게 돼서 그냥 한 가방만 고정으로 사용한다. 이번 검정 백팩은 캐리어를 사러 매장에 들렀다가 우연히 구입했다. 눈에 뜨여 한 번 메봤더니 가방이 내게 속삭였다. "이건 널 위한 가방이야. 나를 가져가~" 심플해서 예쁘고, 가벼운 데다가 수납공간도 많았다.
들고 다니는 가방은 늘 크로스백이나 백팩만 사용한다. 숄더백이나 토트백은 사용이 어렵다. 가방을 잃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덜렁이의 징조는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 돌아보니 벤치에 둔 책가방이 통째로 사라졌다.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이라도 먹으면 늘 가방을 두고 와서 다시 걸음을 해야 했다. 대학교 땐 작은 보조 가방에 전공 서적이랑 새로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를 넣고 다니다가 지하철에 예쁘게 두고 내렸다. 찾아봤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후로 절대 손에 드는 가방은 구입하지 않는다.
아무리 예뻐도 나에겐 무용지물이다. 디자인보다는 몸에 착 달라붙을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인지부터 따진다.
나에게 가방은 나를 빛내주는 보조 액세서리 이거나 남에게 뽐내는 물건이 아니다. 오로지 실용적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방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옷마다 다른 가방을 맞춰 드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고, 조심성이 많아야 하며,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귀한 것을 귀하게 대할 줄 아는 태도가 깃들어야 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방에 대한 마음은 실용성이 전부인 나도 딱 한 번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신랑이 연애 시절 마지막 생일 선물로 명품백을 사줬다. 색상도 디자인도 예쁘고 처음 받은 명품에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는 점이다. 명품 가방은 주인을 잘못 만나서 시장 가방이 되었다. 지하철 바닥에도 내려놓고, 비 올 땐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했다.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담을 데가 없어서 꽃게 봉지를 그대로 가방에 넣었다. 사람들은 경악하던데 나는 무감각했다. 신랑은 그 뒤로 영원히 명품백 선물은 안 해줘도 되는 구실이 생겼으니, 속이 편할 것이다. 좋은 물건도, 좋은 작품도 누가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냐에 따라서 그 대상이 천해지기도 귀해지기도 한다.
"여보, 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 엄청 커다란 상자에 건어물을 종류별로 다 모아서 나한테 선물해 줘."
신랑한테 뭐 사달라고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요구했던 선물이다. 어릴 적부터 건어물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나는 그런 선물을 꼭 한번 받고 싶었다. 돈 아까워서 하나씩 감질나게 먹어야 했던 건어물을 원 없이 먹어보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어릴 적 과자 종합 세트처럼 마음 놓고 골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결혼 전부터 요구하던 선물이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 나에게는 귀한 선물인데 신랑에게는 하찮은 선물이라 차마 아내에게 주기 뭣한 모양이다. 명품백 사주는 남자는 멋지고, 건어물 사주는 남자는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나보다. 중요한 건 받는 사람인 나의 기쁨인데 말이다. 이번에 이가 깨져서 치과에 갔다. 이제 잇몸도 약해져서 점점 이가 벌어질 거라고 했다. 명품가방은 늙어서도 들 수 있지만 건어물 가방은 더 늙으면 이용이 어려워진다.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본다. 검정 백팩을 메고 행복하게 건어물을 뜯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