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답다.

모두 자기답고 그래서 모두 아름답다.

by 밝음

어느 순간 거울을 보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보는 게 어색했다.

언제부턴가 무표정한 얼굴이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어떻게 웃는지 잊어버렸다.


두 아이 육아 그리고 친정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으로 정신없는 십 년을 보낸 후 내게 남은 것이었다. 분명 그 기간 동안 얻은 것도 많다.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하며 성장도 했다. 열심히 살았고 아이들도 무탈하게 잘 키웠다. 그런데 삶만 남았고 나는 사라졌다.


마음이 힘들어서 '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건 큰 착각이었고,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래도록 내 마음을 등한시했고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고, 어떤 것으로 괴로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되었다. 울고 있는 내가 보였고 웃음을 되찾고 싶어 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보다 보여야 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며 마음을 기록했다.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안 하던 짓도 하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불편해도 뛰어들었다. 상황을 살피고 조건을 따지기보다 자유롭게 그냥 나를 펼치고 싶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나다운 게 대체 뭔지 의문이 생겼다. 세상의 잣대나 보편적인 기준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성을 발현하는 것을 나다운 것이라고 여겼다. '나다움'이라는 세 글자가 판을 치는데 정작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건 뭔지, 그래서 '나답다.'라는 건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데 하늘을 까맣게 칠했다. 그걸 보고 어른들은 아이의 심리에 문제가 있다고 치료를 권했다. 세월이 지나자, 하늘은 꼭 파랗게 칠할 필요가 없다며 자유롭게 자기만의 색으로 나타내라고 권한다. 자신이 봤던 하늘이 파랗길래 파란색으로 칠한 아이는 자신만의 개성을 펼치지 못한다고 언질을 받는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한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기준을 들이밀어 있는 그대로인 것을 해석하거나 판단하려고 애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늘을 파랗게 그리면 그냥 하늘을 파랗게 그린 거고

하늘을 까맣게 그리면 그냥 하늘을 까맣게 그린 거다.


이랬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저랬기 때문에 문제가 없거나, 이랬기 때문에 멋진 것이고, 저랬기 때문에 개성을 살리려 애써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언제는 남들과 달라서 문제가 되었다가, 이제는 남들과 다르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지만 세상이 하는 모든 말을 따르다 보면 내 삶의 배는 산으로 간다. 잘 듣고서 그래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나의 답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건 나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타고난 결이 조용조용하지만, 장난기와 유치함을 주체할 수 없는 건 잘못된 것일까? 어느 집단에 가서 잘 어울리기 위해 쾌활한 모습을 보이면 그건 나다운 게 아닐까?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 있는 걸 즐거워한다면 그건 나다운 게 아닐까? 나라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이런 나로도 저런 나로도 살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 그것 모두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게 나다운 것이다.


나답게 살고 싶었다.

나다운 게 뭔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다웠다.


우리는 늘 나답게 살고 있다. 내가 지녔던 모든 모습이 내가 선택했던 것들이기에 나다운 모습들이었다. 낯가림이 심해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리던 나도, 좋아하던 친구들을 따라 깻잎 머리를 하던 나도, 서른 전에는 결혼해야 한다고 무작정 강행하던 나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안교육에 당당히 들어가던 나도 모두 나다운 모습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건 특정한 성격이나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게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에 진실한 게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자아를 기준으로한 에고로서의 나를 나라고 할 것인지, 육체를 떠나 의식과 존재로서의 나를 나라고 할 것인지에 따라 나다움은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현실의 나도 나이며 전체로서의 나도 나다. 둘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나다. 우리는 모두 나답게 살고 있다. 살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나답게 살고 있는 증표다. 지금의 나처럼 살고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모두 나답다.

그래서 모두 아름답다.

존재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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