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랑 트러블을 잘 안 만드는 성격이다. 웬만한 것들에는 거부감 없이 맞추는 편이고, 딱히 내 것을 주장하는 것도 힘에 부쳐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흔 인생 기억 속에 당당히 각인된 세 명의 여인들이 있다.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스쳐 지나간 인연도 있고, 남은 인연도 있다. 길이나 정도와 상관없이 좋은 관계를 쌓고, 좋은 마음을 주고받았었다면 그걸로 참 감사한 인연들이었다.
나는 눈치로 그냥 맞추거나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서 사이 나빠지기도 참 어려운데 그렇게 악연으로 기록된 인연들을 돌아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도 아니고 다 다른 때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 관계들의 공통점은 그때 그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쁜 관계로 종결지은 사람들과의 특징은 바로, 그때 내가 굉장히 애를 썼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준이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다. 상대의 요구 수준이나 기호에 맞추면 나를 힘들게 하거나 싫어할 일은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보다 상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보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면 인정을 해주거나 윈-윈적인 관계로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끝이 없었다. 아무리 맞춰도 못하는 것만 끊임없이 들추어 나를 찔렀다. 내가 노력한 것들은 자신들에게 당연한 것들이라고 여겼고,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언지하며 부족하고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치부했다.
몇 년이나 지나서야 그 관계는 끝이 없는 굴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관계를 끊었다.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나를 스스로 갉아먹으며 상대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그 뒤로 깨달은 사실이 참 많다. 내가 잘 하려고 노력하는 그 행위를 영원히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야 했다.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는 것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랑을 받고자 했던 나의 어리석음으로 나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불편한 관계를 싫어하는 내 강박적인 부분 때문에 애를 쓰다가 끝을 모르고 달렸던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의 선은 항상 어렵다. 상대가 중요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 부분과 할 수 있는 부분을 챙기면 된다. 그 이상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수용하거나 맞추다 보면 결국 건강한 관계의 경계는 무너지고 나는 다칠 수밖에 없다.
모두와 잘 지낼 수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은 너무나 많고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얻기 위해서 노력했던 어리석은 젊은 나에게 경고한다. "모두와 좋기를 바란다면, 나와는 사이가 나빠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