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시작이 좋으면 대화의 끝도 좋아진다.
'수현~~"
나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신랑이다. 신랑은 연애 때나 결혼해서나 한결같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 내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듣는 내가 어색했었다. 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어색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것이 이유였다.
부모님은 늘 동생과 나를 쌍으로 불렀다.
"수지!!!"
수현이도 없고, 지현이도 없었다. 마치 짬짜면처럼 내 이름과 동생이름이 짬뽕된 수지가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짬뽕이름마저도 어릴 때나 부르셨지 청소년 이후부터는 듣지 못했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셔서 듣지 못했고, 아빠는 딸들과 사이가 데면데면 해지면서 우리를 부를 일이 없어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늘 나를 별명으로 불렀다.
'새우', '꺼실이', '스누피', '도우너'.'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요리조리 바뀌어가며 이런저런 내가 되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친구들에게 내 이름은 또너(도우너의 줄임말)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또너일까. 예순, 일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또너일 것 같다.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별칭으로 부르는데 유일하게 신랑만 부지런히도 내 이름을 불러준다.
"여보, 왜 당신은 결혼해서도 호칭을 안 쓰고 이름으로 불러?"
"응? 그냥. 나는 이름 부르는 게 좋아."
신랑은 그렇게 내 이름을 열심히 불러주는데 나는 신랑을 이름으로 잘 부르지 않는다. 연애초반부터 남편이름은 '쟈기'였고, 결혼하고는 '여보'로 바뀌었다. 생각해 보면 그 호칭이 더 닭살스러울 법한데도 나는 능청스럽게 잘 썼다. 이름은 누구나 부를 수 있지만 '여보'라는 호칭은 유일하게 나만 사용할 수 있다. 가진 자의 권력 같기도 하다.
신랑이 불러주던 처음엔 그렇게도 어색하던 내 이름이 지금은 참 좋다. 이제는 이름을 불러주니 오히려 더 좋다. 이름 불러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재산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기분 좋은 말들이 있지만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말은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처음 들은 말, 나의 이름.
이름 이전에도 나는 존재했지만 이름의 불림으로 나는 더욱 선명하게 존재했다.
"너 거기 있구나." 하고 이 땅에 내가 있다는 확인 도장을 받는 기분. 그게 바로 '이름'이니까.
요즘은 나도 신랑의 이름을 자주 부른다. 올해 개명을 했기 때문이다. 개명한 이름은 자주 불러줘야 좋다는 말을 듣고 낯선 사람 같은 그 이름을 노력해서 자주 불러주고 있다. "문규야!"는 너무 어색해서 "우리 문규~~" 이렇게 부른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 상대방에 대한 호칭도 관계에 영향을 끼치나 보다. '여보!'라고 했을 땐 뭔가 늘 요구하고 부탁할 때가 많았는데, '우리 문규'가 되니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함부로 하지 않게 되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수현~"과 "우리 문규~"인 우리를 상상해 본다.
늙어서 그런 우리 하나만 보유하고 있어도 충분히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르는 시작이 좋으면 다음 대화도 좋아질 가망성은 커진다.
그러니 우리 모두 다정하게 그이를 불러보자.
"우리 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