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모여서 내 인생이 되었다.
2023년. 나답게 살기를 작정하고 열심히 나와의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촉수를 나와 내 삶에 두고 내가 더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것을 돕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다. 새벽 5시, 혼자 아침을 맞이하며 오늘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순간순간 내 생각과 마음에 귀 기울였다. 내가 지금 왜 그런지, 그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아주고, 도와주었다.
낮동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밤, 무사히 누워 잠들 수 있었다면 무조건 감사했다.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삶에게 감사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그렇게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오늘을 하루하루 쌓아갔다. 그런 노력과 시간들의 합작으로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와 함께 한 노력의 결과였다.
세상의 수많은 풍파를 만났다. 그 당시에는 살아내야 했기에 풍파인 줄도 몰랐다. 거센 비바람을 맞고 있는 줄도 모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나를 보았다. 겨우 작은 불씨 하나를 남기고 살아있는 내가 보였다. 가슴이 무너졌다.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느라 나는 나를 지켜내지 못했다.
"지나가면 그뿐이더라."
"세월 지나면 다 잊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고 흔하디 흔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겐 와닿지 않는 말들이었다. 지나가도 잊히지 않는 무거운 일들이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짙게 새겨지는 일들도 있다. 바위에 새겨진 각인처럼. 그렇게 각인된 기억들은 내가 사라져야만 함께 사라질 수 있는 기억들이다.
가족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초등학교를 막 지난 시기에 만난 엄마의 죽음은 그 나이의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힘듦이 아니었다. 아직 나에 대한 존재도,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너무 어린 나이에 만나게 된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들었다.
한 사람이 죽음을 만나기까지 가족들은 그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의 삶도 다 무너졌다. 사랑하는 가족의 떠남으로 다친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 세상의 냉엄한 숙제였다. 그것은 어둠으로 향하는 열차의 철로였을까.
엄마의 죽음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IMF사태가 벌어졌다. IMF 후폭풍과 함께 하나 남은 부모인 아빠마저 점차 무너져갔다. 그렇게 20년을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빠를 지켜봐야 했다. 나와 동생은 양부모를 동시에 잃은 삶이었다. 또다시 부모를 잃을까 봐 무서워하는 마음과 몸으로, 마음으로 떠나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 그렇게 양가감정을 가지고 생을 버텨내야 했다.
결혼하고 애도 낳고, 이제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나 싶었다. 그런데 곧 첫째를 아기띠에 메고 아빠의 암투병 외래진료를 다녀야 했고, 둘째 조리기간 중에는 결국 집에 모셔서 함께 살아야 했다. 그리고 동생은 만삭의 몸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지키고 아빠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다.
'하늘은 왜 우리에게만 이런 일을 주시는 걸까...'
삶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다. 아등바등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없었다. 이것이 지나가면, 저것이 왔다. 너무 어린 시절 만났던 삶의 어려움은 아직 팔 근육도 길러지지 않은 나에게 커다란 짐을 하루종일 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지도 못하고 어른의 삶으로 들어가 실전을 해내야 했다.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 긴 시간 어둠 속에서 지내야 했다.
아픔이 너무 컸었기에 가끔 타인의 아픔을 하찮게 여길까 봐 나는 겁난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했어도 나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내 삶이 소중한 만큼 그 누구의 삶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내가 슬프고 힘들었던 건 그런 일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애정과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아픔의 크기와 정도는 그 사람만의 것이기에 절대적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힘든 일도 아픔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삶을 살았을 뿐이다. 내가 세상에 와서 경험하고자 하는 무엇이 있어서 겪게 된 내 영혼의 철저한 계획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아픔을 기억하고 싶다. 그 아픔으로 나를 상처 주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격려하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난 저녁, 신랑과 식사를 하면서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믿어지지가 않아. 대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겪어냈는지 모르겠어."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은데 그 세월을 우리가 다 헤쳐냈다니 신기해."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면,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이겨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나는 그 시간들을 이겨냈기에 존재하는 나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과거가 소중하다. 어느 경험 하나도 달라졌으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험으로 다른 내가 되어 있을 테니까.
힘든 과거를 잊지 못해도 괜찮다. 그것도 나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좋은 날만 소중한 시절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웠던 그 모든 시절이 나의 소중한 시절이다. 힘든 일조차 털어버리기 싫고 간직하고 싶은 나는, 삶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이 삶을 사랑하는 이유도 나의 삶이기에 그렇겠지. 내 삶이라서, 나라서. 그래서 소중하다.
오늘도 이런저런 일들이 내게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와는 상관없이 이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소중한 나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