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말로하는 결투가 되는 경상도 사람의 표현

by 밝음

"아나, 자!자! 언니야 이거 가꼬가라." (여기 있다. 자, 이거 가져 가라.)

"야가 와이라노. 댔다 마, 가지가라. 와이라노 진짜"(얘가 왜 이러니, 됐어. 괜찮아. 왜 이래 정말)


공원을 걷다가 아주머니 두 분이 싸우시는 장면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대화다. 경상도 사람들은 안다. 저것은 절대 싸움이 아니며, 싸움은커녕 오히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두 분이 헤어지기 직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한 아주머니가 언니의 주머니에 마구잡이로 돈을 집어넣는다.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봉투가 아닌 현금으로 보아 차비 정도의 명목인 것으로 추측된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마음씀에 고맙다. 괜찮다는 말대신 "와이라노"가 나간다.


놓치기 아까운 명장면이라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링 위에서 치고받으며 경기를 하는 명선수들처럼. 둥그런 입구에 서서 돈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치열한 주고받음 후에 차비를 준 동생이 언니에게 돈을 집어던지듯 뿌리고 뛰어간다. 권투경기에서 선수보호차원으로 위급히 던지는 흰 수건처럼. 돈은 힘 없이 떨어졌고, 상대 선수는 홀연히 사라졌다.


남은 선수의 마지막 말.

"못 살겠다 진짜' (고맙다는 말이다.)




경상도의 언어는 대체 어쩌다가 그런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일까. 길이도 짧고 소리도 억쎄다. 바다 근처의 삶에 근심이 깊어 친절하고 길게 말할 사이가 없었던 걸까. 파도소리에 목소리가 묻힐까 크게 소리치다 보니 고함소리가 말소리가 된 걸까. 언제 어디서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참 궁금하다.


길이와 소리는 그렇다 치고. 마음과 정반대의 표현을 하게 된 건 왜였을까. 분명 마음은 다정한데 표현은 씅질을 낸다.(성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약해 승질을 넘어 씅질이라고 하겠다.)


여기저기 씅질내는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다. 고마워도 씅질을 내고, 속상해도 씅질을 내고, 미안해도 씅질을 낸다.


아이들에게 정말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이 경상도 표현이다. 사투리는 그렇다 쳐도 억양은 가정불화에 성냥 같은 것이다. 쉭! 긁으면 동시에 활활 타오른다. 습관이 무서운지라 이 씅질섞인 말투에 내가 말하고도 내가 화들짝 놀란다. 지구에서 10년 밖에 안 산 애들인데 이미 우리 판박이다. (이미 4살이면 그대로 따라 한다.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거울처럼 모방한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관계라는 줄 위에서 서로 마주 서서 눈빛을 주고받는 행위다. 마음은 사랑인데 표현은 화로 표현 되는 것. 그건 줄 위에 함께 서지도 못하는 것이다. 눈빛은커녕 상대편 뒤통수에 대고 더 멀리 가라고 물을 뿌리는 행위다.


그 표현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안다. 고마워서 저러는 것이고 민망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어색함과 낯간지러움을 무릅쓰고 있는 그대로의 표현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하다. 솔직함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자꾸만 우리의 따뜻한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은 그 사람의 마음속 일 테니까. 가고 싶어 하는 곳에 자유롭게 보내주는 것이다.


애써 씅질로 포장하지 말고.

이젠 투명하게 승부를 보자.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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