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수많은 불빛들이 함께 어둠을 밝히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부산이다. 차 타고 10분이면 곧바로 바다를 볼 수 있다. 동쪽 서쪽 이 쪽이든 저 쪽이든 어디로 가든 바다니 어느 바다 앞에 가서 놀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바다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부산 사람인 나는 밤을 떠올리면 어두 컴컴한 밤바다의 풍경이 익숙하다.
윤슬에 한없이 반짝이는 푸른 물결은 오간데 없고 무섭도록 까맣다. 가로등 하나 없는 밤의 바다와 마주 보고 독대를 하고 있으면 일 분도 지나지 않아 꼬리를 내리게 된다. 바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 그 무서움과는 다른 무서움이다.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넓고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만큼 깊은 그 까만 어둠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다. '나 하나쯤은 삼켜버리면 있었던 티도안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났다고 까불며 사는 인간이라고 해봤자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미물이라는 걸 한순간 깨닫는다. 큰 산이 주는 경외감과는 다른 무거운 경외감을 바다가 가지고 있다.
이십 대 청춘의 꽃을 만개하던 시절.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밤에 황령산 봉수대에 올랐다. 부산에서 몇 안 되는 야경이 유명한 곳이었다. 부산의 까만 밤바다에만 익숙했던 나는 야경의 황홀감에 빠졌다. 저 멀리 익숙한 까만 바다도 보였다. 그렇게 무섭던 바다는 존재감도 부리지 못했다. 온 세상을 덮은 반짝이는 불빛들이 까만 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빛내며 웃고 있었다.
반짝이는 야경이 너무 어색했다. 낯설어서 멋지다는 말보다 신기하다는 말이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같은 장소였지만 낮의 산에서 보는 풍경과 너무 달랐다. 부산 전역에서 빛나고 있는 불빛들을 보며 '이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라는 걸 그때 체감했다.
무수히 많은 불빛들은 무수히 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을 터다. 손님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밝히는 화려한 불빛, 늦은 밤까지 잔업을 마치지 못한 지친 노동을 비추는 불빛.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하는 건 알기에 늦은 밤까지 노력하는 책을 비추는 불빛. 각각의 불빛은 각자의 사연을 담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었다.
우리 집도 저렇게 자주 늦은 밤까지 빛을 밝히고 있었다. 우리 집 불빛의 사연은 노모의 시름이었다. 할머니는 늘 새벽에도 불을 밝히고 바지런히 움직이셨다. 자신의 터전이자 직장이기도 한 우리 집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몸이 닳도록 움직이셨다. 삶의 상처에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과 일찍 엄마를 보내고 고사리 손으로 스스로 삶을 꾸리는 손녀들을 위해 자신의 삶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그 자리를 지키셨다.
하루종일 집안을 돌보고 돌아서면 먹일거리를 장만했다. 없는 살림을 매일 열심히 건지고 또 건져내지만 겨우 쌈짓돈을 만지작 거리는 삶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삶을 버티는 일이란 사랑이 아니고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밤늦게까지 집에 불을 밝히고 가장 많이 했던 일은 맨들하게 닳아버린 오래된 염주알을 돌리는 것이었다. 한 알 한 알 넘겨도 넘겨도 영원히 끝이 없는 염주알을 넘기며 염불을 외셨다. 들릴 듯 말 듯 웅얼웅얼 들리는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우리의 자장가였다. 암흑 같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곁에서 우리의 무탈을 바라고 잘되기를 염원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살아갈 이유였다.
아름답게 빛나는 야경을 보면 그날을 떠올린다. 각자의 사연으로 빛나며 세상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불빛들, 그리고 할머니의 애처로운 사랑이 담긴 우리 집의 새벽 불빛.
할머니의 인생은 이제 새벽에 불을 밝힐 의무가 없다. 걱정해야 할 아들은 이미 세상에 없고 손녀들은 할머니의 기도대로 무탈히 자라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새벽불을 밝힐 의무도 없지만 동시에 더 이상 스스로 불을 밝힐 수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아흔다섯의 새해를 요양원에서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이 많았지만 새벽불을 밝힐 수 있는 그때가 좋았을까
새벽불을 밝힐 수는 없지만 걱정 없는 지금이 좋을까
비교할 수 없는 어둠과 어둠의 비교가 가혹하기만 하다. 그래도 나는 어느 때가 더 불행할까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행복을 논하고 싶다. 그때도 삶이었고 지금도 삶인 거니까.
할머니가 품은 생명의 빛은 오늘 밤에도 세상의 수많은 불빛들 중 하나로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