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갑자기 나라에서 한 살을 깎아주는 바람에 내년에도 마흔이 된다. 아직도 마음은 어린 십 대 같은데, 넓디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미래 따위는 없이 오직 지금만 살았던 그때의 나 같은데, 몸과 정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몸은 뛰기 힘들어하고 정신은 늘 지금을 떠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십 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든 걸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한 줄 한 줄 더해져 가는 걸 보면 그래도 마냥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나의 기억창고에 한 줄을 더해진 일들 중에 가장 최근의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다.
보통은 사건이라고 해봤자 내 가정에서의 일, 조금 더 나아가면 학교나 직장이라는 소속사회의 일, 더 커봤자 지역사회나 나라에 국한된 일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덮쳤다. 지구인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던 일이다.
2020년 역사적인 그때 첫째는 첫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둘째는 첫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함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립되어야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입학이 문제가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는 것마저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게 더 문제였다. 집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유로운 감옥이었다. 거기다 우리는 밤 9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는 가장을 둔 가족이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돌아보면 그때 그 시절 애들과 함께 시간을 살아내려고 온갖 짓들을 다했다. 몇 년간 잠자고 있던 내 과거 실력을 꺼내서 교육계획안을 짜고 아이들과 매일 할 활동을 정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더 느리게 갔다. 그래서 평소보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시간에 맞춰 생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야속하게도 여전히 느리게 갔다. 아이들이 없으면 그렇게 빨리 가던 시간이 하루종일 그것도 매일매일 아이들과 함께 하니 하루가 억겁의 시간 같았다. 나에겐 일반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은 사라지고 오직 카이로스의 시간만 남은 것 같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이었다. TV가 없으니 그것도 고역이었다. 지겨움을 이겨내 보려고 라디오도 듣다가 음악도 바꿔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른인 나도 나지만 하루에 몇 시간은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갇혀있는 게 할 짓이 아니었다. 자라나는 새싹이 쑥쑥 자라나지 못하고 해도 바람도 없는 음지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전투적으로 무언가를 했던 것 같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다가 그래도 너무 지겨운 날에는 이사를 했다. 집에서 집으로 옮기는 이사가 아니라 집안에서 이리저리 집기들을 옮기는 내부이사였다. 할 일을 찾다 찾다 갑자기 집안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파를 벽 쪽에서 창가로 옮겨버리기도 하고, 방안에 있던 책장을 거실로 끌고 나오기도 했다. 아들 둘이 같이 쓰던 방을 분리해서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장난감방의 교구장들을 미로 찾기처럼 구역을 만들어 기지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가구들을 이리저리 바꾸고 나면 며칠은 심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에 온 기분이고 지겨움에서 벗어나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기분을 바꿔주는 것들은 다양하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에 따라서 다른 기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서도 기분이 바뀐다. 날씨의 영향을 또 어떤가. 쨍하게 해 뜨는 날은 내 기분도 저절로 쨍하게 변한다.
사람의 기분을 바꿔주는 것들이 이렇게 다양하지만 내가 해본 것들 중의 베스트는 다른 환경에 나를 두는 것이었다. 가구 배치만 바꿔도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 들면서 내 기분도 달라졌다. 기분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니 하루가 달라졌다. 인간이 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기주 작가는 산문집 『한 때 소중했던 것들』에서 '인간은 기분이 나쁘면 기운을 낼 수 없는, 기분의 산물이고 기분을 연료로 하는 기분의 기계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기운을 내고 싶다고 낼 수 있는 자유의지의 존재가 아니라 기분의 점화로 기운이라는 힘을 낼 수 있는 감정의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기분의 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선택으로 어떠한 조건을 만들고 기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기운과 하루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분의 기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얘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기분이 나쁘면 기운을 낼 수 없지만 기분이 바뀌도록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분의 이용자이고 기분을 사용하는 기분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