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크리스마스로 만들 것인지는 네가 결정해.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아직 어린이인 두 아들을 둔 우리 집은 매년 아이들 선물을 챙긴다. 챙기기 싫지만 챙겨야 하는 일이다. 무조건적인 부모의 역할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아이들의 꿈과 믿음을 지켜주자는 우리 부부의 합일된 의견일 뿐이다.
애들이 말 못 하고 아장아장 다니던 아기 때는 당연히 챙기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부부끼리 즐거운 성탄절을 잘 보내면 그게 아이에겐 곧 최고의 선물이다.
첫째가 네 살 때 처음 집을 벗어나 유치원에 갔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성탄 행사를 통해 산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챙겨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다니던 유치원에서 추구하는 교육관은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되도록 수공예 선물로 주자는 것이었다. 상업적이고 정형화된 선물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고 놀이를 통해 자신을 펼치는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 에너지가 담긴 선물만큼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없다는 것. 똥손엄마인 나는 매년 고생을 해야 했다.
첫해는 양말주머니, 두 번째 해는 가방, 세 번째 해는 요정. 의미는 있었지만 참 고역이었다. 12월 내도록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마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지 매일 스스로 고민해야 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글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글자를 모를 땐 그냥 눈떠서 산타선물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젠 스스로 편지를 쓰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내 손은 편해졌지만 정신은 곤란해졌다. 예전에는 만드는 일이 힘들었지만 그냥 아무거나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고객님의 요구에 맞추는 산타가 와주시지 않으면 기쁜 구주 오신 날 집안의 평화와 행복이 와장창 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12월이 되면 우리 부부는 최대한 아이들에게 촉수를 세운다.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나면 그때부터 애들은 '당연한 듯' 그때부터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잡아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2년 전에 해외배송 2주 걸리는 자동차를 바라는 바람에 기한 내 마련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다.)
몇 년을 고생해서 소중한 수공예품을 선물했지만 아이들의 욕구는 마트에 있었다. 보지 못한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욕구는 오직 본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스쳐 지나가다 본 것, 친구를 통해 본 것, 대중매체를 통해 본 것, 어쩌다 본 것. 내가 그것을 먼저 만나야지 '나도 저런 것 같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애들은 쪽지를 적었다. 이것저것 심사숙고하여 자신들의 바람을 종이에 적고 산타양말에 담았다. 아이들이 없을 때 확인해 보았다. 이번에는 꽤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라 신랑과 나는 아주 흡족해하며 준비를 미리 끝냈다.
그런데 성탄 며칠 전 이것들이 단체행동을 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며 종이를 다시 꺼내 다른 소원을 작성하는 것이 아닌가. 몰래 읽어보니 사줄 만한 물건도 아니었다. 즐거운 성탄가가 울려 퍼져야 할 날 누군가의 짜증과 울음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선물은 샀고, 버스는 떠났고, 우리는 강물을 건넜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직진이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아이들은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알아서 벌떡 일어났다. 바람처럼 거실로 달려가 선물을 확인했다. 4학년인 첫째는 그래도 철이 좀 들었는지 자기가 얼토당토 한 소원을 빌어서 못 받을 줄 알았다고 애써 합리화를 했다. 1학년인 둘째는 선물 확인과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나 이제 이거 필요 없단 말이야! 다른 소원 빌었는데 으앙~~~"
"산타 할아버지는 빌었던 소원들 중에 그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걸 골라서 보내주신대."
"이건 옛날에 그런 거잖아. 내가 다른 소원 다시 적었단 말이야."
"멀리 외국에서 보내셔서 바꾼 소원보다 선물이 먼저 준비되었나 봐."
어찌어찌 마음을 정리하고 그래도 자기가 예전에 받고 싶어 했던 포켓몬 카드집에 열심히 카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수함이 가득한 아이들은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있게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세상에는 천사도 살고, 도깨비도 살고, 산타도 산다.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다. 실제 있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있다고 믿는 것들은 내 마음속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산타를 믿는 그날까지 산타놀이를 한다.
우리 집에서만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산타할아버지 놀이의 끝이 점점 보이는 것 같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머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집 전설 때문에 애들은 가슴으로 겨우 그 의심을 부여잡았다.)
산타가 없어지는 그날부터 우리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와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석가탄신일에 선물을 주지 않듯 크리스마스에도 선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야 할 의무가 없다. 석가탄신일도 성탄절도 모두, 나를 떠올리고 나로 돌아가 내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면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는 날이다.
아이들을 재우며 인사를 건넨다.
"얘들아 메리크리스마스~"
첫째가 대답한다. "메리크리스마스"
둘째가 대답한다. "최악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일 뿐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메리'로 만드는 것과 '최악'으로 만드는 건 과연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