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은 나의 결정이다.
"신랑, 신부는 오늘 이후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할 것을 여기 모인 하객 여러분들 앞에 맹세합니까?"
"오! 마이 주례사님. 잠시만요. 결혼이란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니었나요? 불행도 포함이라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경우에나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제 감정은 아무 일 없이도 매초 변하고 있다고요. 날씨가 개입하면 더 심하게 변하고요.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제 마음은 변할 거예요."
"맹세할 수 없겠습니다. 사람일을 어떻게 알아요. 그냥 지금 좋아서 하는 거예요. 당연히 우리는 이 결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죠. 하지만 맹세는 없어요. 갑자기 싫다가 다시 사랑할 수도 있겠죠. 변함없는 사랑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요."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구의 증명 -
불행이라는 건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 같이 있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 건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지. 그래서 무엇과도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라면 충분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거야. 우리가 만날 때마다 불행했다면, 불행했던 기억이 훨씬 많다면, 불행해도 괜찮으니 같이 있자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결혼 앞에서 각자는 더욱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해. 콩깍지로 덮인 자신의 단편적인 착각 뒤에 긴 결혼을 이어나갈 혜안이 필요하다고.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산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전이야. 거기다가 아이까지 낳고 산다면 두 배, 세 배로 큰 도전이 되어버리지. 그 즉시 불행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상태가 돼. 갑자기 행복추구자가 되어 내 행복만을 미친 듯이 찾게 돼. 누가 내 행복을 훔쳐갔다며 상대방을 도둑으로 의심하게 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건 아주 순식간이야.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어차피 나는 혼자 살아도 불행을 피할 순 없어. 그건 인간의 숙명이니까. 어떤 욕구를 가질 것이냐, 무엇을 불행이라고 느낄 것인가에 대한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우리가 결혼을 한 거야.
솔직히 말해서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지금이 무조건 행복한 게 맞다고 장담은 못해. 그런데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상대가 가지고 있을 때가 많고, 상대가 할 수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을 때가 많더라. 혼자서 생존하는 것보다 팀플 할 누군가 있다면 든든하고 나누는 기쁨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돼. 함께를 선택하는 순간 분명히 두 배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한 몸이야.
우리는 자유를 조금 잃고 책임을 조금 덜게 될 거야.
알겠지?
주례사를 다시 정해보자.
"행복하자고 함께 있는 거지만, 불행해도 괜찮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겠습니다."
"이럴 때나 저럴 때나 한결같은 마음이지는 않겠지만,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그 마음만은 한결같이 기억하겠습니다."
"어떤 불행이 와도 함께 하겠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의 존재가 된다면 나 자신을 등지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계시는 하객들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맹세하겠습니다."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은 없다.
함께 있기로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