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어 지겹고 오래되어 사랑하는 우리 동네
'30년 경력 안경, 다초점렌즈, 학생환영'
아파트로 올라가기 직전에 만나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오늘도 우리 동네에 불 켜진 안경점을 마주한다. 안경점 창가에 매달린 저 작은 현수막도 벌써 십 년이 되었다. 이제 사십 년 경력이 되신 안경점 사장님은 어김없이 안경점에 불을 켜고 작은 우리 동네를 밝히고 계신다. 같은 업종, 같은 자리에서 삼십 년을 지키고 계시는 사장님. 나는 늘 사장님의 삶이 궁금하다.
그 가게를 알았던 건 내가 다른 동네에 살 때부터였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할머니집이 있었던 동네다. 명절이 되면 이 작은 동네를 뛰어다니기 바빴다. 내가 간 할머니 동네는 시골도 아닌데 시골 같았다. 분명 광역시안에 속해 있는 떳떳한 도시였지만 동네가 가진 향기는 영락없이 마을이었다.
초등학생 꼬맹이 시절에 놀러 왔을 때부터 안경점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어쩌다 결혼하고 신혼집도 이 동네로 얻었다. 그러다 보니 삽십 년째 안경점을 보고 있게 된 것이다.
안경점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불이 꺼져있었다. 설날 당일과 추석 당일. 명절 연휴에도 늘 장사를 하셨다. 동네장사라 손님이 붐비는 걸 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장님 혼자 계시거나 손님이 한 팀 있거나. 두 경우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사장님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지키고 계셨다. 어느 날은 홀로 맨손체조를 하고 계셨고, 어느 날은 홀로 안경들을 매만지고 계셨다.
그런 사장님을 오다가다 훔쳐보면서 늘 사장님의 마음이 궁금했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게를 지키고 계시는 걸까. 안경을 무척 사랑하시는 걸까. 오래되어 가게와 한 몸이 되신 걸까.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일만 하시는 게 지겹지는 않으실까. 손바닥처럼 마음이 자주 변하는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안경점 사장님은 늘 신기하고 경이롭고 궁금했다.
그런데 이곳은 안경점만 그런 게 아니다. 할머니집에서 곧장 뛰어내려 가 군것질거리를 샀던 'OO상회'라고 되어있는 작은 슈퍼도 삼십 년째 그곳을 지키고 있다. 슈퍼 바로 옆 지하 노래방도 마찬가지다. 맞은편 고깃집과 중화반점은 이십 년, 가장 어린 문구점도 십 년이 넘었다.
동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곳은 오다가다 마주치는 어르신들이 모두 서로 아는 사이다.
"아재요 어디 가는 교?"
"언니, 오후에 우리 집에 수육이랑 김치 해물라카이 그때 온나 알아째."
형제처럼 가족처럼 이웃처럼 그렇게 한 동네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고 계셨다. 이 동네에는 할머니집뿐만 아니라 큰아버지집도 있었고, 작은 아버지집도 있었다. 거기다 나까지 살고 있으니 우리 집안식구들만 해도 네 채를 담당하고 있었다.
Chat GPT가 나오고 숏폼이 휩쓸고 있는 세상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우리 동네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천천히, 그리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다. 이 흐름이 어떨 때는 지겹고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번화가에 나가거나 백화점이 있는 시내에 가면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채 끼가 올라오고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집에 도착해서는 늘 똑같은 말을 속으로 내뱉는다.
"역시 우리 동네가 제일 평화롭다."
삼십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안경점 사장님을 신기해했던 나도 사실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몇 십 년째 이곳에서 돌고 돌듯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 입장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니 이제야 사장님이 조금 이해 갈 것 같다. 매일 같은 곳에 계셨지만 매일 같은 하루가 아니셨을 것 같다. 늘 같은 곳에 살지만 그래서 더 편안하고 진짜 내 터전 같다는 생각도 들 것 같았다. 내 자리에서 묵묵히 같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사명감이 생기고 역사를 쌓는 기분이 드실 것 같았다.
우리 동네는 예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육지의 끝까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친정아버지가 어릴 때 다니던 국민학교를 우리 아이들이 지금 다니고 있다. 옛날엔 한 반에 아이들 수가 육십 명이 넘고 한 학년이 스무 반이나 되었다고 하던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한 학년에 한 반만 있고 한 반에 아이들도 열다섯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매년 줄어서 걱정이 된다.
평화롭고 조용해서 좋은 우리 동네지만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가 아니다 보니 점점 가구수가 줄어든다. 몇 십 년을 한곳에서 버티고 삶을 이어가던 어르신들도 연세가 많으니 매해 집집마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이 생긴다. 더해질 일은 없고 내어줄 일만 남은 우리 동네. 우리 동네의 삼십 년 뒤는 어떤 모습일까 사뭇 궁금하다.
동네 가운데를 지키는 커다란 공원은 스위스 루체른을 떠오르게 한다. 나무들이 줄을 짓고 거위들이 걸어 다닌다. 봄이 되면 매화나무와 벚나무가 절경을 이루고 가을이면 국화 축제가 열린다. 나지막한 산에 오르면 바다를 낀 일몰 풍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아파트 주차장에 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면 불꽃축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리 동네는 사람들의 떠나감에도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사랑하지만 보내주는 게 더 큰 사랑이라는 부모의 마음처럼, 자꾸만 사람들을 내어주지만 외롭지는 않아 보인다.
나는 어디에 살더라도 이 동네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기쁨과 행복 슬픔과 고통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살아서 삶의 한편이 아닌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의 삶이 진하게 새겨진 우리 동네. 나는 우리 동네가 지겹지만 우리 동네를 사랑한다. 지겨운 것도 사랑인 것도 모두 진실이라서 그렇다. 지겨운 것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지만 지겨울 수 있다. 각각의 마음이 모두 존재한다.
우리 모두의 삶도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