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래희망은 이루어진다.
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만든 학급문집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운 이름도 보였고 잊고 있었던 이름도 보였다. 기억 속에 이름은 선명한데 얼굴은 흐릿한 친구도 있었다. 그 시절 유행했던 롤링페이퍼, 삼행시 짓기, 자기소개 등이 실려있었다. 유치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내용들이 잔뜩 있었다. 내가 쓴 글들을 쭉 읽어보는데 자개소개글 안에 장래희망칸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궁금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열다섯 소녀인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장래희망: 현모양처'
'아···'
나는 외마디 탄성밖에 지를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있고, 의사도 있고, 대통령도 있는데 왜 하고 많은 것들 중에 현모양처였을까. 저 소중한 칸을 아무 생각 없이 적다니.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교실로 돌아가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문집이지만 제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라고.
사실 나는 어릴 때 딱히 꿈이 없었다. 그냥 지금 무탈하면 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고3 때 처음으로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었다. 수능 원서를 써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고민해서 생각해 낸 게 유치원교사였다. 그 꿈을 가지기 전까지 나는 아무런 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였으니 중학생 장래희망이 저런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런데 분명 저것도 꿈이었을 텐데 나는 왜 저런 꿈을 꾸었을까 궁금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꿈은 아니니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현모양처의 뜻을 찾아보았다.
'어진 어머니인 동시에 착한 아내.'
뜻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내 마음속에 있는 진짜 꿈이었다. 나는 진짜 현모양처를 꿈꿨었나 보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노력했던 게 바로 결혼생활과 육아였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가정만은 훌륭하게 경영하고 싶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현명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학 공부를 했었고 육아공부도 끊임없이 했었다.
내가 꿈을 이뤘다는 걸 알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꿈꿨던 것들을 많이 이뤘다. 현모양처가 되었고, 어린이집 교사도 되었다. 함께 성장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신랑이 10년 만에 함께 자기계발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에 신랑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여보, 잘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예전에 그걸 바랐는데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게 많은 것 같아."라고 말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 익숙해서 잘 몰랐었다. 그런데 내 생활과 나를 잘 들여다보면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되었지만 예전엔 간절히 바랐던 것들이었던 게 많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나 과정으로 그려지지 않았을 뿐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흔이 되어서 새롭게 장래희망을 가져본다. 나는 영원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순히 책 몇 권 내는 작가가 아니라 기획서도 쓰고, 작사도 하고, 광고글도 쓰고, 에세이도 쓰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어 죽는 그날까지 내가 보고 들은 것들,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한 줄이라도 더 글에 담아내고 싶다.
환갑이 넘으면 원장이 되어서 어린이집 운영을 해보고 싶다. 그간의 경험과 세월의 지혜를 벗 삼아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어린이집과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건강한 양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상담하는 센터도 함께 운영하고 싶다. 그걸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이 없다. 희망은 언제나 누구든지 가질 수 있고, 어떤 종류 어떤 모습이든 희망을 가진 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인 일이니까 말이다.
어린아이 든 나이 든 어른이든 살아있는 한 누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꿈이 있다는 건 미래의 나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