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들의 정체성
"아, 시간이 부족해."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자꾸 외친다.
아이들 겨울방학이다. 어떻게든 새벽기상을 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역부족이다. 인간에게는 함께 있으므로해서 채워지는 행복이 있고, 오롯이 혼자 있으므로해서 채워지는 욕구가 있다. 지금 나는 두 번째 행복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아이들 유치원 때는 다른 사교육 하나 없이 두 달짜리 방학도 견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을 살고 있다. 겨우 방학은 한 달이고 미술학원도 하나 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니. 인간은 망각이 특기고 적응이 재주다. 이미 나는 아이들이 오전에 학교에 가있는 생활리듬에 적응했고 그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보내야 하는 일상은 분명 행복이지만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부자유할 자유도 있다 한다마는 방학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며,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다마는 지금을 만족이라고 마음먹기에는 내 마음 그릇이 넓혀지지가 않는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아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자꾸 만들어내니 매일 즐겁게 글을 쓰던 일도 오늘 안에 클리어해야 할 미션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나에게 매우 슬픈 일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진짜 부족한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본다. 부족이라는 것은 결국 제로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라 꽉 채워진 상태, 혹은 나의 기준에 이 정도는 있어야지라는 설정값 영역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본다. 내가 오늘 무엇들을 했는지 돌아본다. 하루를 복기해 보니 꽤 많은 일들을 했다. 아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존에 하던 리추얼들은 놓치지 않았다. 양적으로 많이 하지 못했을 뿐이고, 편하게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방학이라 몸이 묶여 아예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선방했던 하루다.
'부족하다.'라는 단어를 '넉넉하지는 않다.'라는 말로 대체해 보았다.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볼 요량을 마음이 만들어낸다. 부족함은 '없다.'라는 코드가 있지만, 넉넉하지 않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다.'라는 코드가 전제되어 있다.
살아가면서 앞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넉넉하지는 않다고 표현해 봐야겠다. 내가 나를 돕는 말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쁘다. 언어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쓸 거라면 나에게 이롭게 잘 써볼 일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짬 내서 써보는 글맛도 꽤 좋다. 다른 환경이 주어지니 또 새로운 글이 탄생한다. 쓰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할 짜릿한 순간을 오늘도 선물 받았다. 글쓰기는 내가 나에게 주는 감동적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