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그리기를 넘어야 색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미술이라고 하면 보통 떠오르는 게 그림 그리기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내가 생각한 대로 그려나가는 것. 그게 그림 그리기의 진수다.
친구들은 스케치북을 펼치자마자 그림을 쭉쭉 그려나갔다. 서슴없이 선을 긋고 구도를 잡으며 자신의 뜻을 종이에 펼쳤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구경하기만 했다. 뭘 그릴건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정할 수 있는 건지 신기했다. 생각하는 것도 어려웠고 생각한 걸 표현하는 건 더 어려웠다. 그래서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내 종이는 여전히 백지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은 늘 대충 그려냈다. 어차피 잘 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백지를 면하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건 나에게 어려움을 넘어 두려움이었다. 그 그림을 어디 제출해야 하거나 사생대회 같은 심사의 목적이라면 그땐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되기도 했다. 대책 없는 막연함. 그림 그리기는 나에게 막연함이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손에 힘은 얼마큼 주어야 할지. 너무 어려웠다. 선하나 동그라미 하나로도 전혀 다른 표현이 되어버리는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유였다.
그런데 그림 그리기와 다르게 색칠하기는 늘 즐겁고 안정감을 주었다. 이미 테두리로 기초적인 틀이 제공되어 있으니 큰 생각도 필요 없었다. 밑그림은 막연함 대신 선택의 즐거움을 주었다. 여러 가지 그림들 중에 어떤 그림을 선택해서 색칠해 볼 것인가 하는 고민은 부담 없는 고민이었다. 색칠하기는 완성했을 때 어떤 작품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대략적인 예상이 된다. 예상되는 그 지점이 있지만 또 신기한 건 막상 색칠해 보면 기대와 다른 새로운 그림을 마주할 때가 많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기쁨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밑그림을 보며 여러 가지 색깔 중 어떤 색으로 어디를 채울지 고민하는 즐거움. 하나하나 색칠해 가며 채워지는 풍경을 보는 즐거움. 색칠하기에 몰두하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고 짧은 시간에도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면 우리는 백지의 인생을 마주한다. 서로 가진 도구가 다르지만 어쨌든 백지에서 그려내야 한다. 공포스러운 막연함이다. 뭐든 뜻하는 대로 그려볼 수 있는 인생인데 그 권능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내 인생을 망치기 싫고 실패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한 줄이라도 그려내야 하는 인생의 선택이 두려웠다. 여기 이 선을 긋게 되면 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내 인생이 어떤 모습이 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용기 있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내 선택으로 그리지 못했고 상황에 끌려가서 그렸다. 그냥 그리던 방향이라서 그 방향으로 선을 더 그었을 뿐이었다. 동그라미를 그렸던 경험이 있어서 동그라미를 더 많이 그리며 살았다. 그렇게 그려낸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닌 느낌이었다. 내 욕구와 꿈이 담기기보다는 현실이 담겨있었다.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범위 내에서 종이를 많이 쓰지도 않았다.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되고 대신 크게 만족스럽지도 않은 타협적인 그림이었다.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제대로 그림을 그려볼 용기가 났다. 친구들은 이미 자유롭게 자신의 그림을 펼쳐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보냈고 한 줄을 긋고 또 멈춰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친구들의 그림을 구경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어떤 그림이든 그려내보고 싶어졌다. 내 그림에 즐겁게 색칠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나의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몰라 두려워하기보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몰라서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삶을 살아보는 게 현명했다.
그림을 망칠까 봐 늘 겁이 났다. 멋진 그림이 아닐까 봐 늘 두려웠다. 그런데 그 그림을 멋진 그림인지 망친 그림인지 판단할 수 있는 건 그걸 그린 사람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나다. 그림을 그리는 건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껏 그릴 수 있고 마음껏 멋지다고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이었다.
도화지 한 장인줄 알았던 내 인생은 매일 새로운 백지가 주어지는 스케치북이었다. 앞장에 어떤 그림을 그렸어도 상관없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다시 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었다. 두려움을 버리고 힘차게 선을 그어본다. 이렇게도 그어보고 저렇게도 그어본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방향으로도 그려본다. 이젠 익숙한 동그라미 대신 찌그러진 모양이지만 커다란 별도 그려본다. 비로소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어진다.
내가 그린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린다.
그림은 그리는 이의 자유다.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려낸 그림은 어떤 그림이든 최고의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유일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