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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Feb 19. 2024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 진실은 실수가 된다.

우정을 위하여 숨길 건 숨기시오.

나에게는 25년 지기 친구 두 명이 있다. 우리는 삼총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함께 우정을 다져왔다. 초등학생이었던 꼬맹이들은 이제 마흔이 훌쩍 넘은 여인들이 되었다. 나와 H는 10년 전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고, J는 자신의 커리어를 끊김 없이 쌓으며 고양이들과 함께 미혼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


J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오랜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후 꽤 긴 공백기를 가지더니 어떻게 인연이 되어 우리와 동갑인 애인이 생겼다. 드디어 오랜만에 커플 모임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H와 나는 남편과 함께, J는 남자친구를 동행해서 여섯 명이 모임을 가졌다.


다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중간 지점쯤 되는 동네의 고깃집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다. 격식 차리는 곳이 아니라 편안한 장소여서 그런지 우리는 J의 애인과 어색함 없이 즐겁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주량이 꽤 대단한 여인들이라 속도전이 시작되었다. 남자들도 이에 질세라 '쨍' 하고 잔 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그 풍경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서 갑자기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역시 낮술도 드시는데 밤술은 뭐 식은 죽 먹기지."


그 순간 갑자기 옆에서 H의 등짝 스메싱이 날아왔다. 2차로 옆구리 찌르기 공격까지 추가되었다. 순간 놀라서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며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J가 입은 웃고 눈은 레이저를 쏘며 쳐다보고 있었다. (참고로 H는 낮술이 주특기다.) 그제야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뉴 페이스를 고려해서 친구들이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게 도왔어야 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뱉은 앞 말을 덮으려고 자폭을 했다. 


"근데 웃긴 건 저번 모임에서는 아무도 술 안 먹고 나 혼자 막걸리 한 통 다 먹었잖아. 너무 맛있더라고~"


H와 J는 내 말이 맞다며 그때 혼자 맛있다고 다 마시더라며 나의 신랑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무마가 되어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자꾸 마음에 체기가 올라왔다.


내가 낮에 술 마셨다는 건 왜 괜찮은 건지. 그리고 내 친구들은 왜 낮에 술을 마시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었다. J의 남자친구도 진짜 낮에 술 마시는 여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모든 진실은 미궁 속에 남겨졌다. 왜 여자는 대낮에 술 마시면 괜찮은 여자가 되지 못하는 건지. 그녀들만의 생각인지, 세상의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하나 분명한 것은 너무 솔직해도 탈이 난다는 것. 솔직함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것. 그녀들이 원했던 발언은 아니었으니 나의 말은 실수로 적용되었다는 결론이다. 첫자리였으니 말을 좀 조심했어야 했다. J의 그는 아직 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괜한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도 밤에 마시는 술과 낮에 마시는 술의 차이를 도통 모르겠다. 술이 우리의 삶에 조금의 즐거움과 행복을 더해 줄 수 있다는 귀한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얘들아 친구가 낮술 좀 즐기는 여자라고 이상하게 볼 거면 그 남자는 그냥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말을 속마음으로 되뇌며, 나는 그날 모임자리가 파하는 시간까지 열심히 함께 '조신한 척'을 떨며 즐겁게 놀았다.


우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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