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Feb 14. 2024

평범이라는 지옥을 벗어나

삶은 모두 절대다.

나는 늘 외쳤다. 평범하게만 살고 싶다고. 어린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평범을 부르짖으며 살았을까.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부모는 없고 내가 부모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다 크지도 못한 채 어린 어른이 되어 살아야 했다. 엄마 없이 내가 나 하나 챙기는 것조차 버거운데 집안일을 살펴야 했다. 돈 없는 할머니의 근심을 함께 껴안아야 했다.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아빠의 담배 냄새를 맡으며 청년의 희망을 만나기도 전에 생의 무상함을 체험해야 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평범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었다. 엄마 아빠가 무탈히 건강하신 것. 부모의 슬하에서 삼시 세 끼 밥 굶지 않고 따뜻한 방에서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는 것. 함께 맛있는 것 먹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서로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사이로 지내는 것. 가끔 서로 잔소리도 하고, 푸념도 하지만 서로가 있어서 힘이 되고 위안을 주며 살아가는 것.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가난하지는 않아서 우리의 노력하에 조금씩 무언가를 이루어가며 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한 평범이었다.


태어나 받아 든 가정을 내가 바꿀 순 없었다. 다시 엄마를 살아나게 할 수도 없었고 아빠를 일으킬 수도 없었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린 나로서 해야 할 일들은 내팽개쳐두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만 바라보며 살았다. 내가 여기는 평범을 갖고 싶어서 그럴 수 없는 환경에다 대고 그것을 내놓으라 떼를 쓰며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병들어갔다. 마음이 피폐해지고 어두워졌다. 나의 무력함과 왜소함만을 느꼈다. 나는 어린 나에게 불가능한 평범을 내놓으라고 나를 괴롭히며 살았다. 


수용하지 않은 현실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왜곡시켜 버렸다. 받아들여야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인정해야 가야 할 길이 보일 텐데 어린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느라 긴 삶을 내버려 두었다.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앎이 없었다. 그냥 놓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잡고 있으면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삶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삶뿐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이 세상에 평범한 것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보니 내가 생각한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 같은 방향을 꿈꾸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당연한 수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 누구가 가지고 있는 정도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것과의 비교로 내 삶을 하찮게 만들고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다. 어떤 이의 삶이든 희로애락이 있었다. 불행이 찾아왔다고 평범 이하의 삶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것도 삶이었다. 그냥 그런 한 삶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평범함의 지옥에서 발을 꺼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없고, 평범함을 넘어 살고 싶다는 마음도 없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을 뿐이고,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삶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중한 삶은 상대적이 될 수 없다. 모든 삶은 절대적이다. 절대이기에 유일한 것이고, 유일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평범이라는 단어로, 평균이라는 단어로 감히 내 삶을 하찮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냉장고를 꿈꾸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