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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26. 2024

언제 글을 쓰냐고 물으신다면

글이 <그나마> 잘 써지는 시간들에 대하여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깜깜한 새벽. 


새벽 어스름만이 나와 친구 하는 그 시간에 나는 글과 친해진다. 다른 시간에는 그렇게 꼬셔도 구슬려도 협박을 해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글쓰기다. 그런데 동트는 아침에는 무장해제 된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준다. 그것은 사실, 때 묻지 않은 새로움으로 내 마음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할 땐 모든 걸 가지고 있다. 아쉬운 것도 없고 조바심도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울 때는 글을 쓰지 않아도 글은 세상에 자연스럽게 잉태된다.



녹음이 짙은 공원, 들숨과 날숨의 드나듦이 생생해지는 산길을 걸을 때. 


자연과 친구 하는 그 시간에 나는 글과 친해진다. 글은 나를 통해서만 탄생한다. 평소의 나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살아간다. 세상의 부산물처럼 스스로를 여긴다. 자연은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인위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 속한 생명, 또 다른 자연이라는 걸 인식하게 한다. 바람에 자유로이 흔들리는 나무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노래하는 새들, 모든 것이 자연이지만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이질적인 것들의 지극한 조화로움 속에 나 또한 함께 자연스러워진다. 그 속에서 두려움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갈 때 글이 저절로 걸어 나온다. 



가슴이 반응하는 재즈 음악.  


아름다운 선율과 친구 하는 그 시간에 나는 글과 친해진다. 불규칙 속에 존재하는 독특한 규칙. 예정된 타이밍이 아닌 허를 찌르는 듯한 짜릿한 시점의 음계를 만날 때, 그 재즈 음악과 함께 글도 예고 없이 종이의 여백을 누른다.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시작이 어디고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정확한 박자가 존재한다. 


음악과 함께 할 때 나의 글도 그러하다. 심장이 멎은 듯 조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글의 음표들이 쏟아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그 고유한 선율에 따르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글이 완성되어 있다. 끝을 정하지 않았지만, 끝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글을 만난다. 다 마치고서야 다시 한번 되감기 하듯 그 여운에 젖게 된다. 귀에서는 끝난 음악이 내 영혼에서는 계속 울려 퍼지듯 글도 종이 위로 떠나지 않은 것처럼 나와 함께 머물러있다.



어쩌면, 글은 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태어나게 할 최적의 상태를 제공하면 글은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올라와 부유할 것이고, 최종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조심히 건져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쓴다는 생각 없이 쓰는 행위를 계속 해서 이어갈 때, 쓰는 일과 쓰는 사람인 나는 하나가 되고 글은 자유롭게 탄생한다. 편안한 축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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