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마침내 내린 날, 바라나시 시내에 있는 한 한국식당을 찾았다. 외국에서 먹는 한국음식은 보통 맛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힘이 난다. 그래서 한번씩은 비싸더라도 사 먹게 된다. 힘을 내려고. 그날의 음식도 그랬다. 맛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이라는 이유로 힘이 조금 났다.
식사를 하는 내내 식당 앞 골목이 시끄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창문을 내다보니 여러 사람이 시신을 함께 들고 갠지스강 화장터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죽은 이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살기 위한 음식을 파는 식당 앞길이 죽은 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니. 식당을 나서는데 또 하나의 장례행렬이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노상 화장터는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쉽게 발길이 향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어떤 풍경을 마주할지 모르니 두려움이 앞섰다. 살아있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닐까.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는 미지의 세계 같은 것.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지만, 살아갈 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줄곧 잊는다.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날은 무언가에 홀린듯 장례행렬을 따라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에 다다르기도 전에 골목 끝에서 희뿌연 연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육신이 타오르면서 내뿜는 특유의 냄새도 골목을 따라 흘러들어왔다. 화장터를 떠올릴 때마다 긴장했던 며칠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골목 끝에 다다를수록 몸과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골목을 마침내 벗어나자 화장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한참 불에 타고 있는 시신과 거의 다 타버린 시신, 켜켜이 쌓아둔 장작 사이에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시신까지. 어디선가 툭 소리가 나더니 둥근 무언가가 대굴대굴 굴러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두개골이다. 살이 모두 녹아버린 팔과 다리는 장작과 좀처럼 구분이 가지 않는다. 어느 게 나무이고 어느 게 사람일까.
갑자기 한 사람이 다가와 나를 잡아 끌었다.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화장터가 훤히 내다보이는 높은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따라가보니 돈을 요구했다. 화장터에 오는 시신들이 모두 부자는 아니라는 것. 부유함에 따라 태우는 나무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했다. 가장 저렴한 나무조차 구입할 수 없는 시신도 이따금 들어오는데, 그런 경우를 위한 기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기부를 하면 조금 더 좋은 나무를 공급할 수 있다며.
마음이 착잡했다. 죽어서까지 부로 인해 대우가 달라진다니. 시신과 함께 타버리면 그만일텐데 그 나무의 종류가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게 좀 한심스러웠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부에 따라 어떤 관을 쓰느냐, 어떤 수의를 입느냐가 달라진다. 마음은 한껏 뾰족해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분실해 새로 맞춘 안경에, 갑작스런 고열로 지불한 고액의 병원비까지… 그렇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잔뜩 늘어난 터였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터에는 유가족들도 있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여행객들도 많았다. 그들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동안 타오르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보면 볼수록 시신은 그저 또 하나의 나무로 보였다. 하나의 자연에 지나지 않았구나. 덧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타고나면 재가 될 몸이었다. 결코 아무 것도 아니라 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삶과, 그럼에도 또 거창한 무엇이라 할 수도 없는 먼지같은 인간의 삶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그날 밤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갠지스 강가에서 열리는 제사 의식을 보러 갔다. 매일 저녁 이곳에서는 갠지스강과 시바 신, 태양의 신 수르야, 불의 신 아그니 등을 향해 전 우주를 위한 제사 의식을 거행한다. 사제들이 모여 기도문을 외우고 향을 피우며 의식이 시작된다. 제사의식이 진행되는 강가는 한낮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힌두교도들과 여행객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몰려있었다. 친구들과 인파를 피해 보트에 올랐다. 갠지스강 한가운데에서 의식이 거행되는 쪽을 바라보았다. 강 위에는 사람들이 띄워놓은 수많은 꽃과 초가 가득했다.
오른편 먼발치에는 낮에 들렀던 화장터가 눈에 띄었다. 여전히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신을 태우는 불이 일년 내내 꺼지지 않는 곳. 불을 이용한 현란한 제사의식 때문일까, 수많은 인파와 동떨어져 유유히 강물을 따라 흘러갔기 때문일까,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육신의 연기 때문일까, 그날 밤은 비현실적인 몽롱한 꿈처럼 내 안에 각인돼 있다.
삼 년 전쯤 외장하드에 넣어둔 그때의 여행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 도시별로 나누어 저장해둔 사진들. 수천 장에 이르지만 인화한 사진은 몇 장 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던 때는 한창 사진찍기에 심취해있었다. 그날 나는 외장하드에 저장된 사진들 중 바라나시의 사진들만 모두 망가져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바라나시에서 잃어버린 건 안경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화장터의 사진도, 강에서 죄를 씻던 사람들의 모습도, 원숭이와 소와 사람이 섞인 좁디 좁은 골목길의 풍경도 모두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