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땅 1

by 박순우

인도다. 네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음으로 정한 여행지는 인도였다. 이름만으로도 특유의 종교와 음악, 음식, 문화 등이 떠오르는 나라. 요즘은 인도가 각종 범죄의 소굴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십 년 전만 해도 그런 이미지보다는 신비로운 나라의 이미지가 강했다. 인도 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인도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인도가 정말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온도차가 극과 극을 달리던 시기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도 정도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 분위기가 짙어질수록 궁금했다. 인도는 어떤 나라일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진짜 인도는 어떤 나라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나는 인도를 좋아하게 될까, 싫어하게 될까. 나는 어느 쪽의 사람일까.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막 개봉해 사랑을 받던 때이기도 했다.


룸비니였는지 포카라였는지 다시 카트만두였는지 십 년 전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네팔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공으로 날아올랐을 때 구름 위로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었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지상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히말라야 산맥이 구름 위로 장엄하게 얼굴을 내밀 때 나는 숨죽여 그 풍경을 가만가만 눈에 담았다.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높이가 8848m, 인간이 쌓아올린 가장 높은 건물인 버즈 칼리파의 높이가 828m.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이제 겨우 자연의 십분의 일쯤을 따라간 것.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정복할 수도 없는, 정복해서도 안 되는 대상인 것. 숨막히는 풍경 앞에서 그런 두서없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인도 바라나시 공항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딱 하나 분명하게 떠오르는 건 그곳에서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물건을 분실했다는 것. 무거운 백팩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 뒤돌아 다섯 발자국쯤 걸어 이미그레이션 용지를 제출하고, 다시 돌아서 다섯 발자국을 걸어 백팩이 놓인 곳으로 갔다. 백팩 앞 주머니가 열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1분이 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다급하게 앞주머니를 열어 손에 잡히는대로 꺼내간 듯했다. 살펴보니 잃어버린 물건은 단 하나, 안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 없을 물건이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걸 대체 왜 가져갔을까. 인도 여행의 시작이 분실이라니.


바라나시 시내로 들어섰다. 신호등도 없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풀풀 날리며 어지럽게 달리는 차량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 그 도로를 유유히 걸어가는 소떼들. 유난히 크고 둥근 눈으로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현지인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안경점으로 향했다. 시력을 체크하고 테를 골랐다. 안경이 완성되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안경점을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 터벅터벅 한참 길을 걷다가 불현듯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보니 그 길의 모든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다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핫팬츠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별 생각 없이 짧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옳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곧바로 시장 옷가게로 향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 남자가 나를 잡아 끌었다. 우리나라의 한 연예인 이름을 대며 그 사람과 친하다는 시덥잖은 말들을 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청록빛의 긴 치마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본 듯한 항아리 바지를 구입했다. 새로 산 바지로 갈아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제야 따가운 시선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소의 나라라는 게 실감나는 거리 풍경이었다. 떼를 지어 사람을 위협하는 소들도 있었고, 소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구석진 골목에는 죽어가는 소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갠지스강에는 더위를 피해 온 소들이 목욕을 했다. 길거리에는 방금 싼 소똥과 오래된 소똥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었다.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루라도 소똥을 밟지 않는 날이 없다며 푸념을 했다. 오래된 똥은 밟아도 괜찮지만, 바로 싼 똥은 정말 감당이 안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풍경, 출처 - unsplash


바라나시는 힌두교도들이 성스러이 여기는 갠지스강이 가로 지르는 도시다. 강 유역에는 화장터가 자리하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살아서는 갠지스 강물에 목욕을 하며 죄를 씻고, 죽어서는 화장된 유해로 이 강에 뿌려진다. 갠지스강은 이렇듯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강가에 앉아 그곳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내세를 위해 현세의 죄를 씻는 사람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 가능할까. 지은 죄를 완전히 씻어낼 수 있을까. 현세의 삶도 불확실한데 내세의 삶까지 미리 챙기는 사람들. 뉘엿뉘엿 붉은 해가 떨어지는 갠지스강 유역에 앉아 그 복잡다단한 사람의 마음들을 짐작해보려 애를 썼다.


어둑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는 건, 여행을 다니면서 스스로가 정한 규칙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갠지스강을 뒤로 하고 간신히 사람 하나가 지나갈만한 좁디 좁은 골목을 지나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여행을 떠나온 뒤 처음으로 크게 앓는다. 고열이 나기 시작한 것. 열은 펄펄 끓어 금세 사십도를 육박했다. 다음 날 숙소 주인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긴 여행을 준비하면서 필수적으로 들러야 했던 곳은 보건소였다. 보건소에서 앞으로 갈 여행지를 대면 현지에서 주의해야 할 전염병에 대해 안내받고 관련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 백신을 미리 맞은 터였다. 하지만 말라리아의 경우 당시 완전한 백신이 개발되기 전이어서 접종을 했다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낯선 나라의 낯선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라씨도 먹으려 하면 벌레가 함께 갈려있어 차마 입으로 넣을 수 없었던 인도였다. 아무리 좋아하는 커리도 수많은 파리떼와 불결한 위생상태 탓에 맘껏 떠먹을 수 없었던 인도였다. 그런 곳에서 피검사를 한다는 게 좀 꺼림칙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큰 병이라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피검사의 결과는 하루 뒤에야 나왔다. 다행히 말라리아는 아니었다. 의사는 고열이 정확히 무엇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해열제 등을 복용하면서 며칠 쉬어보라고 했다.


숙소에서 이틀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갠지스강 유역에 자리잡은 숙소였다. 그 이틀 동안 내 기억에 남은 건 호수처럼 잔잔한 갠지스강 위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과 아침이면 복도 가득 죽어있던 수많은 벌레들, 침대 위에서 이따금 발견되던 집게벌레가 전부다. 열은 오른 지 사흘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려갔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떠나온 여행인데 이렇게 쉽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고 있었다.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해질무렵 풍경,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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