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숫자와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수식어가 없는 사람이고 싶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지역도 학벌도 없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사람. 스펙이라 불리는 것들로 나를 설명하기에 이는 너무 단편적이다. 인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는 평면의 사람이 아니다. 내 인생을 단 몇 개의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다. 나는 입체적인 인간이며, 내 스펙은 나를 소개하는 아주 작은 부분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를 소개해야 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프로젝트 얼룩소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 필명 옆에 한 줄 소개를 덧붙였다. “세상사에 관심많은 사람” 얼룩소 베타서비스를 지나면서 나는 이 마저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른 한 줄을 적어넣었다. “얼룩소에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짐작할 때 몇 개의 단어 안에 갇히길 바라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배짱인지 모르지만 내가 궁금하다면 내 글을 보라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았다. 구독자수가 많아서 가능한 배짱이었던 것 같다.
“아들 둘. 고양이 둘. 제주의 작은 카페. 그리고 책과 글. 박현안은 필명입니다” 브런치에 적어둔 지 오래된 내 소개글이다. 나는 어제 이 글을 지우고 다른 글귀를 적어넣었다.
“오래 글을 놓지 못한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을 꿈꿉니다. 제 글도 쓰고 쓰려는 사람들도 돕고 있습니다. 박현안은 필명입니다.”
짧은 소개글을 적으면서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출간작가라면 나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좀 되겠지만, 나는 꽤 오래 글을 썼음에도 아직 내 이름 박힌 책 한 권 내지 못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겠다 생각한 지는 십오년쯤 되었고,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이삼 년쯤 걸렸으며, 나를 둘러싼 숙명들을 객관화하는데 십 년이 또 필요했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참 쓸데없이 구구절절하다.
결국 나를 설명하려면
이렇게 구질해져야 하는 걸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나열해본다. 여성, 엄마, 아내, 집사, 바리스타, 섬사람, 진보, 페미니스트,
쓰는 사람 등. 나열한 단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게 묻는다. 이 단어들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그 무엇도 온전한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늘어놔야 비로소 그 말들이 나를 대변하게 될까.
누군가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ㅇㅇ학교 졸업, ㅇㅇ근무, 연봉 ㅇㅇ원, ㅇㅇ거주, 자산 ㅇㅇ원 등. 얼마전 카페에 방문한 한 어르신이 자신의 아들에 대해 자랑하면서 유독 억대 연봉을 강조했다. 누군가는 연봉이나 학벌만으로 성공한 인생이 된다. 숫자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타당하게 만든다. 뒤돌아서며 나는 좀 다른 게 궁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성숙한 인간일까.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이런 걸 설명할 수는 없는 걸까.
사람들은 누군가의 현재를 평가하면서 그가 얼마나 고심하며 살아가는 신중한 인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나 이름들로 말할뿐이다. 아기때는 몸무게나 키로 설명하고, 학생이 되면 성적으로 갈음한다. 졸업을 하면 출신학교 이름이, 취직을 하면 연봉과 회사이름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잣대가 된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스펙이나 사는 아파트 이름이, 아이를 낳으면 다시 우리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따지기 시작한다.
마치 그 숫자와 이름들이 한 사람의 모든 걸 대변한다는듯 우리는 참 쉽게 말을 뱉는다. 어떤 걸 가장 좋아하는 아이인지,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성장의 계기가 되었는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어떤 사람으로 늙어가고자 하는지,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를 설명할 간단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결한 숫자와 각종 이름으로만 말할 뿐이다. 이렇게 간결하게 한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많은 고비들을 넘어왔고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으며, 타인과는 다른 나만의 잣대를 갖고 살아간다. 오래 간직한 꿈이 있고, 보이지도 않고 보여줄 수도 없지만 나는 나를 완성해가기 위해 매일 매순간 내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싸우고 있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숫자와 이름들을 나열해보았자 나를 설명할 수는 없고 오히려 가리고 덧칠할 뿐이다.
나는 오직 글로만 말하고 싶다.
단순한 언어가 아닌 조금 길고 복잡한 언어들로 나를 설명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그저 그런 짧은 단어들로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리라. 그러니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간결히 소개하기를 포기한다. 나는 그저 나일뿐, 단순한 낱말들로 나를 표현할 수도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나를 짧게 소개하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만 말할 것이다. 나는 박현안이다. 그게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덧, 이렇게 쓰고나니 큰일이다. 브런치에서 나는 존재감이라곤 없는데, 내 이름 석자로 모든 걸 대변하려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글을 써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