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인간의 바보같은 반복된 싸움
한번은 이럴 줄 알았다. 프로젝트 얼룩소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기에 활동을 그만 두면 분명 고비가 한번은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어떤 감정으로든 분명 들이닥치리라. 다만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고비를 지금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마음이 힘들 때 무엇이 원인인지 파고 파다 보면 결국은 욕심일 때가 많다. 나는 타고나기를 욕심이 많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누군가를 이겨먹어야 하는 인간이 타고 난 나인 것. 그 욕심에 부합하는 삶을 산 적도 있었지만 지극히 짧았고, 이후 나는 끝없이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성적을, 간판을, 명함을, 돈을, 경력을, 편견들까지.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그래야 마음이 평온에 이르렀으니까.
부끄럽게도 나는 최근 며칠 동안 책을 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얼룩소를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내 책을 내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왔으니 내 글에 집중하고 진짜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책을 기획하고 싶었다. 막상 그러자니 역량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나는 글을 쓰는 걸 사랑하고, 계속 쓰고는 있지만 이를 한데 묶는 능력은 없었던 것.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저 사람의 책은 무슨 제목일지가 떠오르는데, 막상 내 이야기를 묶자니 머리가 하얘졌다.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온통 책에 집중하고 있으니 결국 욕심이란 걸 깨닫는다. 매일 쓴 지 고작 8개월. 나는 이제야 걸음마를 뗐다. 그런데도 얼룩소에서 이룬 것들에 취해 당장 책을 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글쓰는 사람들도 돕기 시작했으니 얼른 그들에게 보란듯이 내 책 한 권쯤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 욕심이 앞서면 괴로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난을 선택한 삶을 살면서 나는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마음 편한 스스로로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 만족을 하고 있었다. 이따금 육지에서 지인이 찾아오고 그들이 툭툭 던지는 말 속에 나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있어도 그저 그러려니 넘기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어느 순간 목이 말랐다. 내가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그동안 깨달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렇게 내 삶을 글자로 표현하고 증명해 남들에게 책으로 건네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 나는 이만큼 깨달은 사람이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는 다르다.
욕심에 짓눌려 발버둥치는 스스로를 보고 있자니, 나는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아직도 멀었다는 걸 깨닫는다. 깨달음은 다가설수록 멀어지고야 만다. 깨달았다고 자화자찬하기 시작하면 깨달음은 그 자리에서 다시 무너진다. 내가 얼룩소에 얻은 건 사실 내 글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인정이었다. 타인이 내 글을 좋아해주고 답글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내게 내 글을 넘어 내 삶을 인정받는 일이었던 것. 그 만족감에 취해있다가 그 세계로부터 놓여나니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는데 마치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것 역시 내세울 책도 명함도 없지만 누군가를 조금은 돕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다. 스스로가 누군가를 도울만한 사람이라 생각한 것. 명함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었던 것. 책을 내고 싶은 것도 결국은 내가 선택해 살아가는 이 삶을 인정받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글 쓰는 걸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쯤 되면 의미가 훼손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그동안 쌓아온 게 무엇이든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일말의 희망을 남긴다. 욕심이 넘쳐 지금은 가려져 있지만 내가 살아오고 써온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건 또 아니다.
그리고 오늘 선물처럼 만난 시 한 편,
미래는 늘 가벼운 걸음으로 온다
박노해
저 가벼운 홀씨 속에
푸른 나무가 들어 있다.
가벼운 나비춤 속에
과실의 꽃가루가
들어 있다.
젊은이의
가벼운 몸짓 속에
미래 현실이
걸어오고 있다.
가벼운 것들을
가볍게 보지 마라.
무거운 욕망을
안으로 감추지 않아
맑아서 가벼운 것들을
무시하지 마라.
오늘 가진 것 적다고
함부로 보지 마라.
저 낮은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깃든
미래의 나침 바늘을
가볍게 보지 마라.
시를 되뇌이며 다시 흙을 만진다. 가장 낮은 곳으로 돌아가 다시 내 정원을 매만진다. 단순해지자. 잡초를 뽑으며 이 못난 욕망들도 함께 뽑아내자. 조금 깨달아도 또 반복적으로 욕망하고 힘겨워하는 바보같은 나를, 그럼에도 끝까지 내가 안고 가야 한다는 걸 상기한다. 내 안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욕심도 들어차 있었다. 그러니 내려놓는 일은 삶이 지속되는 한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일. 나는 언제쯤 평온에 이를 수 있을까. 불가능한 꿈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