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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단 하나의 존재

누구나 세상에 그런 존재 하나쯤은 필요하다

by 박순우

평소 아이들은 남편보다는 내게 더 의지하는 편이다. 이따금 마음놓고 어리광을 부리는 상대가 엄마인 나인 것. 병원 문제로 나홀로 육지를 방문했을 때 남편은 걱정을 했다. 혹시나 돌발상황이 생기거나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까봐. 그 기간동안 아이들은 의외로 순하게 아빠를 따랐고 남편도 덕분에 별 무리없이 혼자서 아이 둘을 보살피며 이박삼일의 시간을 보냈다. 나도 꽤 마음 편히 육지행을 마칠 수 있었고.


문제는 오히려 내가 섬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불거졌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이들은 내심 긴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나와 만나고 몇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평소 안 하던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별 일 아닌 것에도 짜증을 냈고 괜히 눈물을 보이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과 상봉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나는 갑자기 육아의 무게에 짓눌렸다. 남편은 내가 오니 아이들이 더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아이들은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니 아이들에게 나는 유일하게 마음을 놓고 비빌 언덕이었던 것. 엄한 남편에 비해 허용해주는 게 많은 나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의 밑바닥 모습까지도 오롯이 받아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내가 없는 동안은 오히려 긴장을 늦추지 않아 바른 생활을 했지만, 내가 돌아옴과 동시에 긴장을 풀고 평소보다도 더 해이해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눈치 챘음에도 나는 좀 힘이 들었다. 여독도 풀리지 않은데다가, 며칠 혼자 있으면서 조용한 자유를 누리다가 갑자기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내고 살림까지 해내려니 힘에 부쳤던 것. 나는 평소보다 더 아이들에게 성을 냈다. 엄마도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아이들이 내심 부러웠다. 이렇게 온 몸으로 자신을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행동을 한다는 게 참 많이 부러웠다. 좀 힘들긴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에게 늘 그런 존재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세상에서 그런 존재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니. 다음에 혹시 그런 순간이 오면 그때는 성을 내지 않고 더 넓은 마음으로 안아주리라 다짐을 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뒤 새삼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게는 그런 존재가 없다. 돌이켜보니 있었던 적이 없었다. 부모는 애초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바닥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은 내게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남편도 나를 어느 정도 받아주지만 나의 가장 깊은 아픔을 잘 안아주지는 못한다. 좀 버거워하는 편이다. 숙명적으로 내가 가진 아픔이 좀 크다보니 감당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모든 걸 다 받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좀 외로웠다. 내 스스로가 좀 가여웠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인연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내 글을 오래 읽어온 사람들 중에 그저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몇 있다. 남편보다 더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글이라는 속성상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오히려 속 시원히 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보니 그들은 어느새 내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되었다. 글을 통해 깊은 신뢰를 쌓게 된 것. 내가 그들에게 아이들처럼 마음을 놓고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지만, 그들의 존재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내 편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존재가 이렇게 내게 큰 힘이 될 줄은, 글을 매개로 그런 관계를 갖게 될 줄은 짐작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 관계를 떠올리면서 나는 참 감사했다. 그리고 글이란 존재가 내게 이런 선물까지 안겨준다는 게 놀라웠다.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19세기 후반, 훗날 작가가 될 영국의 가난한 시골 소녀 한 명이 집시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 이것이 당신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낯선 이와 맺는 특별한 계약이며, 작가와 글쓰기라는 행위를 이루는 고독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이다. p101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 자음과 모음만으로 만든 세상으로 그런 불가능할 것만 같은 사랑을 만들어낸다는 게 내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 자신의 가장 고독하고 은밀한 내면을 다루지만, 결국 가장 개방적이며 찬란한 무대에 서게 되는 게 글이 아닐까. 제일 음습한 곳에서 꺼낸 마음이 표현하는 순간 가장 보송하게 말려지는 경험이라니. 그래서 나는 글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마음 놓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어떤 밑바닥의 모습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세상 단 하나의 존재가 내게는 글이므로. 그래서 참 다행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있듯 내게 글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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