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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Sep 29. 2019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집구석에서 바라봅니다.

제주에 삽니다.

산 지 7년째입니다.

그 사이 참 굵직한 일들이 대한민국에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이라면 국정농단.

이어진 대규모 촛불집회.


멀리 제주에서 아기를 키우다보니 늘 마음만 집회에 가있었습니다.

오늘은 몇 명이 모였나. 촛불은 몇 킬로미터를 밝혔나.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져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실을 맺던 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단 생각을 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미안하긴. 넌 가장 위대한 엄마잖아.

그 말에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또다시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번엔 검찰개혁입니다.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습니다.


조국을 지지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조국이 아니라 검찰개혁이라는 겁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조국이 아닌 누가 법무부장관이 되더라도 그 자리를 향한 검찰의 정치적 수사는 계속될 겁니다.

의지를 갖고 있고, 가족의 희생을 감내하고도 이뤄내겠다는 그의 신념을 믿어보려는 것입니다.


경험으로만 세상을 배운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겐 경험이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검찰에게 농락당한 경험.

그 사람을 결국 정치적 수사로 잃은 경험.

짖어대는 언론에 갸우뚱하고 주저했던 경험.

지못미를 외치며 눈물을 훔치던 경험.

빼앗긴 민주주의의 시간들.

촛불로 다시 찾은 우리의 정권.

무르익은 기회와 놓치면 안된다는 절박함.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희생이 있었기에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더는 안타까운 희생이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며 거저 주어지는 현재는 없다는 걸 실감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집권은 뼈아픈 패배였지만,

윗세대들의 환상이 허상이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조국에 대한 야당의 비난과 언론의 보도가 정도를 지나쳐갈 때 의아했습니다.

야당이 사활을 걸고 검찰개혁을 막고 조국을 범죄자 취급하며 논란의 본질을 흐릴 때,

검찰이 국정농단 수사 때보다 더 신속하게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 수사를 진행할 때,

언론이 속보에 단독을 더해가며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갈 때,

우리는 데자뷔를 겪습니다.

이런 적이 과거에도 분명 있었다는 사실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걸.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절감합니다.


어제 모인 200만명의 촛불집회는 그렇게 다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혁명의 역사를 씁니다.

야당과 언론과 검찰이 스스로 개혁의 대상임을 증명하는 과정을 거친 뒤,

우리는 결국 촛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나비효과라고 하죠.

그들은 이런 분노의 결과를 짐작이나 했을까요.

대통령 탄핵 문제도 아닌데 이 많은 인원이 거리로 나올거라 예상이나 했을까요.

그들은 분명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겁니다.

언론 장악으로 감춰진 민심을 제대로 마주하게 됐으니까요.



반짝이는 200만 촛불 사진을 보면서 자꾸 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필 제주로 이주해온 이 시점에 굵직한 시국이 벌어지고 있는 게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더는 미안해하지만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를 갖는 것에 두려움을 갖던 지지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라.


정확한 코멘트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두 시민을 기르고 있습니다.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었습니다.

민주 시민으로 자라날 아이들을 내 손으로 기르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려고 합니다.

지금은 집구석에서 바라보고만 있지만,

언젠가 꼬맹이들 손을 잡고 함께 참석할 날을 고대하며 말이죠.


혁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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