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우 Jan 07. 2022

탈모에 대한 단상

이재명 후보의 탈모 공약이 연일 이슈다. 탈모인을 생각해준 유일한 정치인이란 말부터 포퓰리즘의 최고봉이라는 말까지, 다양한 반응으로 온라인이 뜨겁다. 시끄럽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탈모 공약은 왜 이렇게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을까.


탈모가 이슈인 건 사실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탈모로 각광받는 샴푸가 매년 달라지고 탈모 관련 약품 광고는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국내 탈모 관리 시장규모만 4조 원으로 추정된다니 이쯤 되면 탈모는 전 국민의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탈모를 비껴갈 수 있는 인간은 몇 안 된다. 나이가 들면 몸 이곳저곳이 쑤시듯,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화 현상으로 머리숱이 적어진다. 스트레스로, 유전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탈모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숱이 적어지는 사람 또한 많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탈모는 결국 돈이 많든 적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는 두 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엄청난 탈모를 경험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산모는 임신 때는 오히려 머리카락이 잘 빠지지 않다가 아이를 낳고 난 뒤 갑자기 머리가 빠지는 증상을 겪는다. 이렇게 빠지다가는 정말 남아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한 움큼씩 빠지는데, 둘째를 출산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빠지는 걸 보면 내 경우도 결국 노화의 현상으로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탈모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 외모지상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 사람들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 명품을 선호하는 것도, 큰 차가 잘 팔리는 것도, 좋은 동네 브랜드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도 '나'를 위한다기 보다 '남'을 신경쓰기에 생기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탈모 역시 머리카락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로 인해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탈모로 자칫 나이가 들어 보일까, 못 생겨 보일까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탈모가 시작되면 병원을 다니거나 약을 먹거나 탈모 관련 샴푸를 쓴다.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모자로 가리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머리카락과 그야말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수년 전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를 보았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머리숱이 거의 없었다. 옆과 뒤에만 머리카락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그 얼마 안 되는 머리를 길어 단정하게 뒤로 묶고 있었다. 스타일도 특이했지만, 더 흥미로운 건 이 남자분의 태도였다. 표정도, 행동도 정말 당당했다. 손놀림, 걸음걸이, 말투 등에서 엄청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당당함에 머리숱이 많은 어떤 남자보다도 섹시하다고 느꼈다.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문제는 탈모가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머리가 빠진 사람은 괜찮지만, 그걸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머리가 빠져도 개의치 않는 사람, 머리가 빠져도 나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 그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로 멋있다. 그런 사람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솔직하고 당당한 것만큼 매력적인 건 없기에.


탈모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는 자신감이 유독 결여되어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조금만 뒤처지면 불안해하는 사람들. 남과 조금만 다르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달라도, 뒤처져도 그럴 수 있다, 그런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여유가 있다면 탈모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머리 좀 빠지면 어떤가. 머리숱이 적으면 또 어떤가. 나이가 들면서 머리숱은 줄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한 뼘 더 넓어지지 않았나. 나에 대해 관대하면, 타인에 대한 시선 또한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면, 우리에게 탈모 공약이 꼭 필요할까. 탈모보다 더 중하고 희귀한 질병에 소중한 세금을 더 투입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라는 시선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지우듯, 우리는 모두 예비 탈모인이라는 생각이 탈모로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거두게 해주지 않을까. 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탈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벗어던질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탈모가 진행되는 사람에 대한 거리낌을 거둘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이런 생각은 너무 이상적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집구석에서 바라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