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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버터 그리고 자유의 기억

by 박순우

스물넷 혈혈단신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해 처음으로 한 일은 먹을 거리를 사는 것이었다. 지낼 곳이 정해져 있었지만 하숙은 아니었으니 밥은 내 손으로 챙겨 먹어야 했다. 마트에는 낙농업 국가답게 각양각색의 유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우유와 버터의 종류만 수십 가지였다. 주식인 빵이 진열된 코너도 긴 선반 하나를 전부 차지할 정도로 꽉 차 있었다. 낯설면서도 신기한 세상이었다.


우유에 특별한 맛과 향이 있다는 것도, 그저 마트 빵인데도 입에서 사르르 녹을 수 있다는 것도, 빵에 버터만 발라도 충분할만큼 뛰어난 품질의 버터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두 그 시절 알게 되었다. 자린고비 학생에게 빵과 버터 그리고 우유는 가장 손쉽게 그럼에도 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소중한 한 끼였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별 생각없이 식빵에 하나둘 버터를 발라 먹다 보면 어느새 식빵은 봉지에 절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빵이 내 안으로 들어갔다는 게 놀라웠다.


대학 졸업도 마치고 공식적으로 공부라는 업에서 내려온 뒤여서인지 자진해서 하는 영어공부는 즐거웠다. 공부를 시키는 사람도 없고, 꼭 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조성되지 않은 사회에 있자니 공부가 절로 좋아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했고, 집에서도 혼자 에세이를 쓰거나 스피킹을 연습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공부한 단어나 표현을 이용해 대화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


영어에 크게 관심 없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학교 공부는 따분했고 외워야할 단어는 너무 많았다. 거의 뒷전이었던 영어를 뒤늦게 다시 공부하면서, 그것도 스스로 하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하다보니 문득 한 소녀가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 영어를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쓰기를 좋아하던 한 소녀. 그 소녀를 잃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 소녀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었다. 태어나 처음 얻은 자유의 세상에서 나는 나조차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 게.


그 시절 내 몸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비싼 음식을 먹은 건 아니지만 주식이 바뀌면서 살은 금세 불어났다. 단조로운 식사 패턴에 처음으로 만끽한 자유의 시간들이 더해지면서 나는 점점 절제를 잃어갔다. 옷에 몸이 빈틈없이 꼭 맞아가고, 점점 숨이 찼지만 아무도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돈이 별로 없어 한국에서 가져간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다 낡도록 빨아서 입고 또 입었지만, 누구도 그런 내 옷차림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8개월쯤을 살다 십 킬로그램쯤 불어난 몸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더는 돈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방랑은 내게 사치였다. 온 세상이 나를 다시 한국사회로 떠밀고 있는 듯했다. 인천 상공에 들어서자 숨이 막혀 왔다. 그날 하늘에는 덮개로 덮은듯 뿌연 공기가 가득했다.


귀국과 동시에 지인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 모두들 불어난 내 몸에 대해서 한 마디씩을 했다. 너 어쩌다 이렇게 됐니. 살 좀 빼라.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라. 가서 먹기만 했냐. 사람들은 변화한 내 몸만 살폈다. 아무도 변화한 내 안을 들여다 봐주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났다. 이번에는 어떤 소리를 들을까. 나는 어떻게 보일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약속을 취소하고 방구석에 처박히는 일이 잦아졌다. 대인기피증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살을 뺐다. 간식을 줄이고 소량의 밥만 먹으며 생활하니 살은 쉽게 빠졌다. 다이어트와 동시에 취업준비도 시작되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곳은 단 하나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또 쓰고, 면접을 보고 낙방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을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내가 대체 왜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들이미는 과정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다만 자유를 갈망했다. 다시 한번 자유롭고 싶었다.


취업을 때려치우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넓은 레스토랑이었다. 하이힐을 신고 넓은 홀을 돌며 그릇을 치우고 손님들을 접대했다. 예약을 관리하고 컴플레인을 들었다. 하루 8-9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월경 주기가 3주로 앞당겨지고 매일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래도 일상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꿈이 있었으니까. 여기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다시 한번 자유를 누리기 위해 떠날 것이라는 꿈이. 그 곳에서 꼬박 4개월쯤을 일하고 곧장 유럽으로 떠났다. 스물다섯,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그리고 가을이었다.





섬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함께 글 쓰는 분이 빵을 선물해주고 가셨다. 첫째는 오늘 드디어 개학을 했다. 공기 속 습기가 빠지듯 섬을 방문하는 여행객들도 빠져나가고, 내게는 다시 자유의 시간이 늘어난다. 돈은 적게 벌겠지만, 손님이 없는 자유의 시간 속을 마음껏 유랑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선물로 받은 빵에 버터를 발라 먹으며 떠오른 시간들을 글로 적는다. 이렇게 슬럼프를 딛고 다시 글을 써보자. 또 다시 걸어가보자. 존재만으로도 황홀한 가을이니까.


자유의 시간을 떠올릴 때면 눈물이 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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