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생신, 설과 추석.
멀리 살아도, 아무리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꼭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는 날이다. 어릴 적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거나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머리가 커지고 난 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무슨 날이 되면 부모를 챙겼다. 별 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잠깐 얼굴을 보고 용돈을 챙기고 함께 밥을 먹었던 시간들. 부모에게 받은 게 없어도, 부모가 내게 고통이어도 자식된 도리를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올 추석엔 처음으로 친정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용돈 한 푼 보내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식의 도리를 저버렸다.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부모의 모습을 덮어둔 채 계속 자식된 도리를 다 하는 건 오히려 부모 자신에게 독이었다. 내가 똑바로 살면 살수록 부모는 자신들 덕분이라고 여겼다.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식들을 거짓말과 회유로 괴롭혔다.
평생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힘들다 믿는, 일상 불화와 재산 다툼과 이혼과 별거 사이를 끊임없이 갈등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자식들이 어떤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부모를 계속 부모라는 이유로 감싸고 공경하며 바닥난 내 가슴을 긁어댈 수는 없었다. 더이상 내게는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는 내게도 다른 가족이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나도 살아야 했다.
추석 오기 바로 전 다시 이어진 불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손길을 내미는 엄마의 연락을 잘라버렸다. 알아서 하시라며 손을 떼버렸다. 이어진 장문의 문자에서 엄마는 자식이 연락하지 않는 이유를 돈에서 찾았다. 부모가 목돈을 해주지 않아서 자식들이 제 역할 포기를 선언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평생 돈 밖에 몰랐던 사람의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고방식에 기운이 빠지다가도 나를 그 정도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부모는 여전히 모른다. 내가 왜 이 섬까지 내려와 살고 있는지. 왜 그렇게 방황하며 여행을 다녔는지. 가난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삶을 왜 살기 시작했는지 부모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부모의 돈을 탐한 적이 결코 없다는 것도, 돈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는 혹은 돈 때문에 부모에게 잘하는, 그런 형편 없는 사람이 적어도 당신의 자식은 아니라는 걸 부모는 모른다.
추석 연휴는 거의 내내 시댁에 머물렀다. 아이들을 재우러 방으로 들어와 누운 조용한 밤, 거실에서 시부모님과 남편이 주고받는 대화가 조금씩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새로 들어간 직장은 다닐만 한지,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지, 소소하게 주고 받는 일상의 대화들. 나도 모르게 귀 기울여 듣다가 불현듯 알게 되었다. 나는 부모와 한번도 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부모는 한번도 내게 나의 일상에 대해 질문한 적이 없었다. 울고 들어와도 얼굴이 엉망이어도 단 한번도 내게 묻지 않았다. 왜 그런지.
나는 자식으로서 참 많은 날들, 긴 시간들을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데 기꺼이 내어주곤 했는데…… 엄마는 그 많은 세월 동안 내게 단 한번도 묻지 않았다. 너는 괜찮냐고. 시댁에 갈 때면 자주 마주하던 그렇고 그런 대화가 그날만큼은 참 부러웠다. 그런 평범한 부모를 가진 남편이 새삼 부럽기만 했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으며 드문드문 친정이 떠올랐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죄책감에 사로 잡히지 않으려 했다. 더이상 자식된 도리를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인데, 라며. 이런 가족도 있다. 이런 가족이 하필 내 가정인 게 너무나 뼈아프지만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부모를 그저 두고보고만 있기에, 아무 일 없었다는듯 덮어두고 자식된 도리를 하기에, 이제 나는 너무 너무… 지쳐버렸다.
그런 명절이 지나갔다.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고 아이들 덕분에 조금 웃기도 했던, 부모와 자식간에 오고 가는 별 것 아닌 듯한 평범한 대화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그런 길고 긴 시간들이 흘러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을 하나둘 살아가면서 텅빈 가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언제쯤 덤덤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