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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14. 2022

책 읽어주는 선생님입니다

게으른 엄마가 사회로 나가고 있습니다

   육아  육아하는데 사실 나는 여기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싫어하는 성격도 있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책을 강요하는-그것도 저학년 때만, 성적 향상을 위해- 분위기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반골기질 때문에 나는  육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아이들이 원하면 책을 읽어주지만, 굳이 강권하지는 않았다.(자기 전에  읽어주긴 한다. 쓰고보니 변명……)


  사실 이렇게 된 건 집에 책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언니는 내게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책을 바리바리 싸서 섬으로 보냈다. 책이라는 게 사려고 하면 돈이 워낙 많이 드니 미리 쟁이라고 보낸 것이다. 아이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시점부터 우리집 다락에는 많은 책이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가 생겨 그 책들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집 거실 한 쪽면에 빼곡히 꽂혀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거실 모습을 보고 나를 극성스러운 엄마라 생각하기도 한다.


  책이 많아서 오히려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볼 책에만 신경을 썼지, 아이들은 그저 원하는 대로 책을 꺼내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실 내 게으름 때문이기도 했다. 이리저리 신경 쓸 게 많은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이 좋을지 깊이 생각하거나 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책은 결국 기호에 따라 보는 거라는 평소 생각 때문에, 아이들이 다양한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기호에 따라 자연스레 선택하기를 바랐다.


  이런 게으른 엄마를 두었지만 아이들은 책을 좋아한다. 첫째는 유독 과학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자연관찰책을 모서리가 닳도록 꺼내 읽었고 과학과 관련된 책은 보이는 족족 꺼내 몇 차례씩 읽는다. 학교 도서관에서도 제법 책을 보는 모양이었다. 둘째는 신화와 위인전에 관심이 많다. 개인적으로 위인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높은 곳에 올려두었는데, 그래도 아이는 한동안 자꾸 그 책을 꺼내 달라고 졸랐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읽고 싶어 하는데 이제 고작 여섯 살이 보기에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아 좀 크면 읽자고 설득해두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의 독서는 그야말로 입맛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그러던 내가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에서 보호자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동아리가 있는데, 책 동아리 중에 학년별로 보호자들이 책을 읽어주는 모임이 있다. 올해 멤버가 여섯 명이라 1학년부터 6학년까지만 책을 읽어주고 병설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학교 보호자 모임에서 몇 차례 들었다. 자꾸 그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 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닐 때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러지 못한다니 마음에 부채만 잔뜩 쌓인 느낌이었다.


  몇 개월 고민만 하다 결국 소심하게 동아리 회장님께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제가 할까 하는데요. 나는 사회성이 떨어진다. 아주 어릴 때는 나서는 걸 좋아해 장을 맡아 일을 한 적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 되었다. 굳이 나서지 않고 협력하지 않고 혼자 하는 걸 선호한다. 아이가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면서 나는 더 이상 혼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는 자꾸 내 손을 잡아끌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만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을 이끌어가는 주체에는 보호자도 포함되었다.


  어릴 적 치맛바람, 촌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탓에 학교에서 나서서 일을 하는 것에 내심 거리를 두고 있었다. 굳이 내 아이만 봐달라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 상황은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치맛바람이나 촌지는 옛날이야기였고, 학교 관련 일은 늘 하는 보호자들만 나서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혁신학교이다 보니 보호자들이 해야 하는 역할도 만만치 않게 컸는데, 보수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열심히 일을 찾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아이만 학교에 보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구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연히 둘째도 초등학생이 되는 시점에는 학년 대표를 한번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둘째가 어리다는 핑계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부족하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 시간이고 일주일에 한 번이니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심한 나는 용기를 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지 어느덧 이 주째다. 첫 주는 집에 있던 책 중에 그나마 읽어줄 만한 것을 두 권 골라갔고, 이번에는 근처 도서관에서 괜찮은 작가의 책으로 두 권 골라서 읽어주었다. 책 육아를 해본 적 없는 내게 책을 고르는 건 무척 난해한 일이다. 오래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해왔던 선배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작가 이름도 알게 되고, 학년별로 어떻게 책을 선정해야 하는지도 듣고 있다. 용기를 내면 세상은 분명 더 넓게 내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수록 용기 내는 게 버거웠는데, 선배들을 통해 배울수록 결국 내가 낸 용기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글쓰기 모임이 그렇듯, 봉사활동도 결국 내가 하는 것보다 가져오는 게 더 많아 보인다.(오늘은 필사 노트도 선물로 받았다.) 나는 또 한 번의 흐릿한 경계에 선다.


  오늘은 남은 예산을 다 써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을 하나씩 고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학교도서관사서협회가 발간한 올 하반기 추천 책 목록을 뒤적인다. 내가 참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게 새삼 느껴질 만큼, 참 많은 다양한 책들이 부지런히 발간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이제야 아이들 책에 관심을 두고 뒤져본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를 자유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좋은 책을 자연스레 알려주는 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되새긴다. 책이 단순히 학업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슬기롭고 따뜻하게 살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내 아이와 함께 미래를 살아갈 다른 아이들에게도 내 용기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그렇게 나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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