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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Sep 17. 2022

식충식물을 키웠지만,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을 동반하는 일

아이들이 우연히 내 브런치를 보고는, 사마귀 글달팽이 글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자신들이 등장하는 글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무척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다 읽고난 뒤 아이들에게 글이 어렵지 않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곤 첫째가 내게 요청한다. "엄마 식충식물 이야기도 써줘." 그렇다. 우리집에는 식충식물도 있다. 생애 처음으로 아이의 요청에 따라 글을 써본다. 글감은 '식충식물'.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내 이마트를 갔다. 섬 끝자락에 살다보니 쉬는 날이라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내를 자주 나가지 않는다. 시골 사람이 다 됐는지 차로 삼십 분이 넘게 걸리는 곳은 가기가 점점 꺼려진다. 그러니 이마트는 분기별로 한번 갈까 말까. 이마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가게 용품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간 참이었다.


시골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위주로 카트에 담으며 오랜만에 열심히 쇼핑을 한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때 아주 작고 귀여운 화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식충식물이 아닌가. 첫째도 나와 같이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엄마 파리지옥이에요!"


책이나 영상에서 본 건 너무 확대한 모습이었던 걸까. 내 눈 앞의 파리지옥은 상상과는 달리 너무나 작고 귀여웠다. 파리를 잡는 입부분이 고작 손가락 한 마디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작은 입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것이었다니. 그런 입이 예닐곱 개 정도 들어있는 화분 하나가 만 원이었다. 눈으로만 보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이들이 조르기 시작했다. "사주면 안 돼요?" 충동구매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보기 드문데다 생각보다 퍽 귀여운 식충식물을 보자니 나도 마음이 동했다. "하나 골라와."


그렇게 식충식물을 키우게 됐다. 알아보니 파리지옥은 주로 열대지방에 사는 만큼 물을 좋아하고 따뜻한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 날은 아직 덥고 여기는 습한 섬이니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없던 자신감이 샘솟았다. 사실 나는 똥손이다. 손으로 하는 건 커피 내리기, 밥하기, 글쓰기 외에 잘 하는 게 도무지 없다. 식물은 특히 잘 키우지 못한다. 신혼 초반 연둣빛이 무척 마음에 들어 데려온 율마도 아파트에서 키우다 다 죽여버렸다. 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자꾸 화분을 가져왔다. 그때마다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식물들은 하나둘 생명이 꺼져갔다.


내가 믿는 건 내 손이 아니라 사실 땅의 힘이다. 화분 상태로 놔둔 건 죽이기 일쑤였지만, 신기하게도 땅에 심은 건 잘 자랐다. 죽어가던 식물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나는 내 손보다 땅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식물 키우기에 자신이 없어 잔디만 깔아둔 마당에는 점차 식물이 늘어갔다. 율마, 애니시다, 수국, 로즈마리, 애플민트, 데이지 등. 물만 적당히 주면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기도 하고 푸르게 잎을 돋기도 하는 식물들을 보면서 땅의 힘에 감사했다.


그렇지만 그건 땅에서 키울 수 있는, 섬의 기온변화가 잘 맞는 식물에 한한다. 열대지방이 고향인 식충식물을 마당에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단 실내에서 물을 주며 식충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시골이고 날이 덥다보니 실내에는 초파리들이 종종 날아다니는데 문제는 초파리의 경우 너무 작아 파리지옥이 잡지 못했다. 파리지옥 입 안에는 세 개의 감각모가 있다. 이 감각모가 모두 건드려져야 입을 다무는데 초파리는 너무 작아 한꺼번에 감각모를 건들지 못했다.


아이들은 벌레를 좀체 잡아먹지 못하는 파리지옥을 보고는 속상해 했다. 그러다 첫째가 마당에 나가 거미를 잡아왔다. 마당에는 수시로 호랑거미가 나타나 줄을 치고 벌레를 잡아 먹는다. 그 중 한 마리를 잡아와 파리지옥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파리지옥이 입을 꽉 다물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마치 버튼이 눌려졌다는듯 서서히 닫히는 입. 입 사이로 삐져나온 거미의 다리가 발버둥을 칠수록 파리지옥은 입을 더 세게 다물었다. 거미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도록. 시간이 지나자 거미의 다리는 점점 움직임이 적어졌다. 그리고 결국 죽었는지 더는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몇 번 보고나니 다시 사마귀가 떠올랐다. 파리지옥은 제2의 사마귀였다. 사마귀가 뜯어먹는 것만 보기 힘든 줄 알았는데, 식충식물이 곤충들을 잡아먹는 모습도 적응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이걸 계속 봐야 한다니. 그 뒤로도 첫째는 계속 곤충을 잡아 직접 파리지옥 입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예닐곱 개의 입은 서서히 닫혀갔다. 파리지옥이 입을 닫았다 다시 벌리는데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입을 여닫는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장난으로 자주 닫히게 하면 금방 죽을 수도 있단다. 아이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진짜 곤충이 있지 않는 이상은 장난으로 건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파리지옥은 우리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추석 연휴 동안 시댁에 간다고 집을 오래 비워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곤충도 잡아줄 수 없고 물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아주 듬뿍 물을 주었다. 시댁에 갔다 와 살펴보니 파리지옥의 상태가 어딘지 이상했다. 몇 가닥의 줄기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파리지옥은 입을 몇 번 여닫고 나면 그 입은 죽고 새로운 다른 입이 돋아난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검게 변한 건 이제 수명이 다해 죽는 것이고, 그러고 나면 새 줄기가 또 돋아나겠지. 여유롭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검게 변하는 줄기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결국 모든 줄기가 검게 변해버린 것. 뒤늦게 물을 너무 많이 준 게 원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게 파리지옥은 우리집에서 짧은 생을 산 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식물이지만 너무나 살아있는 동물같은 식물이니 목숨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맞아 보인다. 나는 너무나 속상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역시 내 똥손을 믿는 게 아니었다. 식물도 동물도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가장 잘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무리 신기해도 다시는 함부로 식물을 업어오지 말아야지.


죽어버린 파리지옥을 보며 첫째가 말한다. "식물 키우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 "맞아. 식물도 동물도 모두 키우는 건 어려워. 살아있는 건 그래서 함부로 키우면 안 되는 거 같아." 시무룩해진 우리는 아무리 신기해도 깊은 고민 없이 생명체를 키우는 일을 삼가자는 다짐을 했다. 그래도 첫째는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거북이나 도마뱀 등 파충류를 키우고 싶어 한다. 오히려 식물보다 동물이 키우기 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첫째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 키우라고 시기를 한껏 늦췄다.


사실 지난번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사마귀를 놓아주었다. 마당에 풀어주었는데 사마귀는 잔뜩 긴장을 했는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꼼짝하지 않은 채 전투태세로 버텼다. 아무리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아 우리 가족은 그냥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사마귀는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꼿꼿이 서있다 지나가는 아이들 발에 밟힌 모양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납작해진 사마귀를 개미떼가 점령해 옮기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영 이상했다. 곤충채집통에서는 그토록 강자였던 녀석도 결국 자연에서는 아주 작은 생명체에 불과했던 것. 놓아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옳았던 것인가 싶어 마음이 찝찝했다.


인간이 그렇듯 식물도 동물도 삶과 죽음은 누군가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마귀와 식충식물의 너무나 쉬운 죽음을 마주하면서 나는 한없이 숙연해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길가의 풀 한 포기와 같은, 작은 벌레와 같은, 언제든 쉽게 꺼질 수 있는 목숨에 불과하구나.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생명체가 죽어가고, 어딘가에서는 생명체가 태어나겠지. 내 손으로 죽이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도 집에 들어온 파리나 모기는 또 잡아야 하는데. 그야말로 언행불일치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삶도 죽음도. 미안해 파리지옥, 그리고 사마귀.



      

글을 다 쓰자마자 첫째에게 보여주었다. 꽤 긴 글임에도 금세 읽고는 무척 만족해한다. 글을 읽고나니 좀 슬프고 속상하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엄마 다음에는 반반이랑 구름이 글을 써줘.”

반반이는 우리집 마당에서 살다시피하는 길냥이다. 구름이는 반반이가 데려온 새끼다.


하나둘 자연에 대한 글이 늘어간다. 자연 에세이집이라도 내야 하는 건가. 아무튼 생각해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이가 벌써 내 글을 읽어주다니. 아이는 자신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한다. 엄마 글이 재밌다며. 그 말로도 엄마는 이미 너무나 감격스럽다.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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