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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이라는 참 부질없는 마음

by 박순우

‘인정 욕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주어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아무리 타인에게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우리 가슴속에는 누구나 일말의 인정 욕구가 숨어있다. 가장 가까이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잘했다…… 사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부모로부터 더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존재 가치가 있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깊은 인정.


우리는 가까운 친구나 지인, 심지어 SNS상 팔로워 등으로부터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네가 없으면 안 돼, 너 참 대단하다, 넌 역시…… 돈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인간은 꽤나 복잡한 동물이어서 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 구석이 존재하고 이를 보통 타인의 인정으로 채우려 한다. 헛헛함의 원인을 내가 아닌 타인이라 여기는 것. 보통 자존감이 낮을수록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타인의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내 경우 남들과 ‘다르다’는 걸로 나의 존재 가치를 찾아가곤 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저 내가 숨을 쉬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스스로를 가치 있다 여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국이라 더 그렇게 여긴 듯하다. 내 삶을 글로 쓰는 것 역시 처음에는 살기 위해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에 감춰진 분투를 보여주기 위해 썼다. 그걸 어떻게든 글로 표현해 보잘것없는 내가 사실은 꽤 볼만하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던 것.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꽤 자유로워진 줄 알았지만, 부끄럽게도 일말의 인정 욕구가 남아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정 욕구는 적당하면 스스로가 성장하는 동력이 되지만 심하면 오히려 앞길을 막는 독이 된다. 어디에서든 자신이 가장 돋보이길 원하고, 모든 말과 행동의 중심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둔다. 자신의 진짜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고 타인이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 지나쳐 진짜 자신을 숨기게 되는 것. 이를 두고 ‘착한사람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착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매여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적으로 돌리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사고방식이다.


사실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면 이런 마음은 더 커진다.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쓰면 더 그렇다. 믿고 읽는 이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왜곡되면 자칫 착한사람 증후군으로 빠지게 된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작가로 살고 싶고 내 이름을 내걸고 싶었기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좁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인데, 이걸 쓰지 못하고 빙빙 돌리거나 모두가 좋아할 만한 그렇고 그런 글들만 쓰게 되는 것.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란, 누구나 만족할만한 글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신형철 평론가는 책 [느낌의 공동체]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덕분에 나는 여전히 한 문장도 두려움 없이 쓰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처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허망도 이제는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p14


처음에 나는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다.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고도 싶었다. 나보다 오랜 시간 글과 싸워온 사람이 이를 미망과 허망이라 일컫는 걸 보면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글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나. 내가 쓴 글로 누군가가 다친다면 이는 옳은 일일까 그른 일일까.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글은 결국, 아무도 바꿀 수 없는 글이라는 것. 그 후로 내 소원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글을 쓰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미움을 받더라도 옳은 말을, 옳다고 믿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인간관계에서만 인정 욕구를 내려놔야 하는 게 아니었다. 글 쓰는 삶도 매한가지였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짜 내가 원하는 나만의 삶에 가까워지듯, 글 역시 인정 욕구를 내려놔야 비로소 진솔한 나를, 내가 닿은 진짜 나만의 생각을 글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뽐내거나 나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고 과시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 담백하게 담는 것.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갖다 붙여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보다, 글에 담길 진짜에 집중하는 것. 그런 글이 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글이 쓰고 싶다. 그런 글이 읽고 싶고. 그럴 때 우리는 마침내 절로 우러나는 서로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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