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속에도 기쁨이 있고, 기쁨 속에도 슬픔이 있다
늘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 몸안에 비정상 세포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산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이상한 수치 하나로 나는 죽음을 내 삶 가까이에 놓게 되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늘 그 수치를 떠올리는 건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검사날짜로 죽음은 자주 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다.
3주 전 다시 한 피검사에서 또 한번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지난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은 암세포도 찾아낸다는 PET-CT검사를 했다. 검사하던 날, 이전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었던 남편은 많이 미안해했다. 사실 미안할 일은 아니었지만.
불안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검사는 내내 조용하게 치러졌다. 몸무게를 재고 당뇨검사를 하고, 약을 투여한 뒤 침대에 누워 한 시간 가까이 꼼짝 않고 누워있고, 그 뒤 삼십 분 정도 기계에 들어가 몸 구석구석을 촬영하는 과정까지. 핸드폰도 만지작거릴 수 없는 침묵의 시간들이었지만, 나는 간간히 졸며 혼자서도 비교적 잘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내일은 그 검사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자못 비장한 글과는 다르게 나는 흔들림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일들도 기획하면서. 한 플랫폼에서 작가로 합류해 달라는 연락이 와 줌미팅을 진행했고, 학교 다모임에 가서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보호자들이 진행하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에 합류하기로 했다. 또다른 글쓰기 모임을 시작해볼까 궁리 중이고, 겨울방학 때는 아이들과 바다를 건너볼까 하는 꿈도 꾼다. 그리고 여전히 작은 카페를 지키고 아이들을 돌본다.
이번 검사 결과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이상한 수치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몇 개월에 한번씩 진행하는 추적검사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나를 다시 병마의 공포 앞에 불러 세울 것이다. 한 의사는 정상범위를 벗어나는데도 몸에 별다른 이상 없이 십 년 넘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정상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정상임에도 정상범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엔 존재한다는 것.
내가 그런 사람일 거라는 희망을 조금 가져본다. 동시에 혹여 암세포가 발견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일상을 살며 성실하게 치료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다짐을 해도 나는 또 의지와 상관 없이 종종 무너지겠지만, 그럼에도 굳은 다짐을 통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일상을 살자고. 공포 앞에 무릎을 꿇어 내 소중한 일상을 통째로 갈아넣지는 않을 것이라고.
삶은 참 잔인해서, 슬픔 속에도 기쁨이 있고, 기쁨 속에도 슬픔이 있다. 장례식장이라 해서 모두가 울고 있는 건 아니며, 결혼식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웃고 있는 게 아니듯. 그 아이러니한 삶 속에 연약한 인간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를 다독인다. 내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이상한 수치 하나가, 결국 나를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이끌 것이라고.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더 좋은 글을 쓰고 소중한 이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