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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by 박순우

나는 쇼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상품과 저 상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어느 게 더 나은지 저울질하는 것에 영 소질이 없다. 지난번에 산 애호박이 천이백 원이었는지, 천삼백 원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상에 기억할 게 참 많고 많은데 어떻게 저런 걸 다 기억할까. 내게 애호박은 삼천 원을 넘기면 살 수 없는 것이고, 그 아래면 비싸도 한 개 정도는 사두는 식재료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한 집안의 경제권을 잡아야 하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반면에 남편은 쇼핑을 좋아한다. 가격 대비 성능 비교를 잘하고 심지어 즐긴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뭐 사야 하는데'라고 말하면 남편은 어느새 여기저기 뒤져 어느 상품이 가성비가 좋고, 어느 사이트가 혜택이 많은지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나는 그런 시간이 아까워 적당한 가격과 품질이면 바로 구입하는 편인데 반해 남편은 보고 또 보며 낱낱이 제품을 해부하는 걸 놀이처럼 즐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으니 참 감사한 일.


남편이 노트북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첫째가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컴퓨터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둘째까지 덩달아 함께 노트북을 만지작거린 지 반년이 흘렀다. 우리 집에는 노트북이 한 대뿐이고 남편은 회사 컴퓨터를 주로 쓰다 보니, 집 컴퓨터는 주로 내가 글을 쓰고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이젠 아이들이 함께 쓰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캐릭터 사진 등을 저장하거나 편집하기도 한다. 컴퓨터에 익숙해지라며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이제는 제법 잘 다룬다. 문제는 아직 어려 조심성이 없고, 모든 기능을 습득한 게 아니다 보니 실수로 파일이 날아가기도 한다는 것. 한 번씩 아이들이 너무 막 다룬다는 느낌이 들면 좀 불안해진다. 저러다 중요한 글이나 자료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내 노트북을 새로 사야 한다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계속 컴퓨터를 사용할 테고 나도 계속 글을 쓸 테니 따로 노트북을 가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왠지 나서서 사기가 꺼려졌다. 글로 정기적인 수입을 얻는 것도 아닌데 나만의 노트북을 갖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필요성과 자격 유무를 한데 놓고 싸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되는대로 쓰며 살았다. 장비빨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


그러다 드디어 새 노트북을 구입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게 남편은 최근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상품별 금액과 성능을 정리해 이야기해주었다. 그 모습을 며칠 지켜보다 결국 내가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엔 내 생일도 있으니 그냥 사버리자. 그렇게 너무나 과분한 선물을 받게 됐다. 나만의 새 노트북이라니. 오래 글을 쓸 텐데 당연하지 싶다가도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비싼 노트북까지 사나 싶기도 하다.


글을 매일 쓰고는 있지만, 길을 잃은 느낌은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오래 길을 잃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자꾸 껍데기가 글을 쓰는 느낌이다. 짧은 글이어도 진짜를 담겠다는 욕심이 지나쳤을까. 욕심이었을까, 의무감이었을까. 내 글을 시간 내어 열어보는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하나 손에 쥐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은 나를 계속 짓눌렀다. 꼭 대단한 무엇이 아니어도 되는데, 나는 늘 대단한 무언가를 쥐어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 어떤 글이든 뽑으면 작품인 그런 글을 매일 쓰길 바랐던 것도 같다.


진짜를 담고 싶으면서, 글쓰기 모임에서 그렇게 생각의 힘을 강조했으면서, 정작 나는 어느 정도 생각이 완성됐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혀 생각을 게을리하기도 했다. '보여지는 나'보다 '바라보는 나'가 강해지면서, 삶의 매 순간을 부딪혀 느끼기보다 굽어보고 판단하려고만 했다. 글은 부딪혀 느낀 것들로 써야 하는데, 굽어보고 판단한 추상만을 늘어놓으려 하니 쓰고 나서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나는 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때 나는 작가가 되려면 남들보다 성숙한 자아를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글이란 길잡이이기도 하니 그런 글을 쓰려면 스스로가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런 생각은 물론 더 깊게 생각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진짜 삶과 나의 거리는 멀어졌다. 나무는 보지 않고 숲 전체 모습만 살피려 한 것이다.


추상보다 더 중요한 건 구체적인 삶을 느끼고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잘한 근거들을 나열하는 것인데, 나는 작고 귀찮은 것들은 모두 건너뛰고 커다란 그림만 자꾸 그리려 하고 있었다. 진짜 삶에 다가가기 위해 글을 쓰는데, 그런 글을 쓸수록 삶은 멀어져 갔다. 일 년을 매일 써 이제 쓰는 것에 익숙하다고, 정작 진짜 삶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에 소홀한 스스로가 부끄럽다.


새 노트북을 채워갈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비싼 장비가 생겼다는 사실에 너무 눌리지도, 너무 가벼워지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쓰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글이 나를 늘 시험에 들게 한다는 것.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현재의 나를, 현재의 내 글을 계속 돌아보게 한다. 무엇을 쓰고 있는 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왜 쓰고자 하는지.


고군분투하는 나를 묵묵히 응원하는 남편이 새삼 참 감사하다. 흔들리지 않는 당신이 있어 내가 쓸 수 있다. 나는 생일선물을 벌써 받았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 우리의 생일은 하루 차이다. 미역국도 한 번만 끓이고 생일 케이크도 하나만 산다. 나보다 하루 생일이 늦은 남편은 늘 손해를 본다. 먹던 미역국을 또 먹고, 먹다 남긴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듣는다. 올해는 조금 다른 생일을 선물해주고 싶은데…… 쇼핑도 싫어하고 게으른 아내는 계획 없이 마음만 앞선다. 아무래도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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