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난 사람

by 박순우

부모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잘 보지 못한다. 글을 열었다가 부모에 대한 글이라는 걸 눈치채면 잽싸게 창을 닫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꾸역꾸역 보다 결국 화가 났다. 세상 모든 엄마를 왜 아름답게만 쓰느냐고. 많은 이들이 추천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자식을 버린 엄마와 화해하는 이야기라는 말에 그걸 어떻게 용서하냐며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다. 마음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부모에게 반항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열살이 되기 전부터 엄마가 지닌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왔다.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종가집에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면서 집 한 켠을 사무실로 만들어 틈틈히 일을 했고, 삼시세끼 여섯 식구의 밥을 하면서도 깔끔한 성격을 놓지 못해 매일 집안을 쓸고 닦았다. 두 명의 자식을 위해 매일 도시락을 쌌고 밤 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장부정리를 했다. 아빠는 처자식을 부양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고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세상 가장 미인인 엄마였지만 좀체 웃는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온종일 자식들 일거수일투족에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는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딸들이 하기 원했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불같이 화를 냈다. 초등학교까지 모범생이었던 언니는 중학생이 되면서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성적이 곤두박질 쳤고 엄마의 말을 더는 듣지 않았다. 언니에 대한 엄마의 한숨이 늘어날수록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는 절대 성적표를 숨기지 말라고. 너는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너만은 내 얘길 들어야 한다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와 딸이 그렇게 싸운다는데 나는 엄마와 싸우지 않았다. 싸울 수가 없었다. 내 눈에 엄마는 너무나 고달픈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고, 그 고생의 수혜자가 자식이라고 생각했기에 엄마에게 나까지 반항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아침에 깨우면 한번에 벌떡 일어났고 아침밥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쑤셔넣었다. 심부름을 시키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벌떡 일어났고 성적이 아무리 떨어져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드렸다.


엄마를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엄마의 박복한 인생에서 나라도 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나를 지배했다. 극심했던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말을 잘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푸념으로 바뀌었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엄마는 수백, 수천 번에 걸쳐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을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또 들은 그녀의 말들을 홀로 삼켜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나를 위해 밥을 하고 돈을 벌고 청소를 한 당신이니 나는 당연히 그녀가 원하는대로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첫째가 뱃속에 있던 만삭 때 엄마는 내게 제왕절개를 하지 않는다며 다그쳤다. 수술하면 간단한 걸 굳이 힘들게 자연분만을 한다며 화를 냈다. 서러웠다. 그래도 자연분만이 아이에게 더 좋다는데 할 수 있다면 내 힘으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유도분만에 실패해 결국 수술실로 들어갈 때까지 나는 엄마한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소식을 알고 달려온 엄마는 내게 배 가르고 아이를 낳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수술 뒤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나는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갑자기 양수가 터져 한 달 일찍 둘째를 낳았을 때 엄마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처음 한 말은, 보험회사에 낼 서류를 떼라는 말이었다. 엄마가 납부하던 내 명의의 보험이 있었고 제왕절개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으니 빨리 서류를 달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주머니로 들어갈 돈이었다.


감정 쓰레기통인 내가 필요했던 엄마는 나를 따라 섬으로 이주를 해왔다. 첫째를 낳기 직전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살았지만 엄마는 내가 아이 둘을 낳아 혼자 손으로 기르는 걸 보면서도 단 한번의 미역국도 끓여준 적이 없었다. 타인은 친정엄마가 가까이에 사니 도움을 많이 받아 좋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이 둘을 기관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혼자 기르는 동안 엄마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엄마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아이를 돌봐주지 않았다. 독립성이 강한 나 역시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절대 꺼내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육지로 이사간 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친정이 멀어져 힘들지 않냐고.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까이 있을 때와 똑같은 삶이었으므로. 오히려 편한 삶이었으므로.


아이를 낳아 키우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받지 못하고 늘 눈치를 보며 애늙은이처럼 살았던 지난 날의 내가 안쓰러웠다. 엄마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 해도 그 아픔은 자신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위로도 공감도 심지어 질문도 받아본 적이 없다. 엄마는 자신이 가장 아프고 자신이 가장 옳았다. 아빠는 없는 사람과 같았다. 처자식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간혹 비웃을 뿐이었다. 불우한 환경인데도 반항하지 않고 부모에게 무조건 순응한 대가는 뒤늦게 내 뒷통수를 때렸다.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을 미화하며 정당화한다. 그 안에서 찢기고 상처받은 자식을 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잘 키워 자식들이 별 탈 없이 산다고 착각한다. 여전히 불협화음 속에 살고 있는 부모는 수시로 결혼한 언니와 내 삶을 비집고 들어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서로를 정신병으로 몰거나 돈에 환장한 사람이라 비하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자식들을 들들 볶았다. 그 과정에서 자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얕은 속셈으로 거짓말을 일삼았다.


어느 날 언니가 내게 말했다. 엄마가 우리를 가스라이팅한 거야. 가스라이팅. 뉴스에만 등장하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그 단어가 내 삶 깊숙히 들어와 오랜 시간 박혀 있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자식을 보고 비웃는 아빠, 무엇이 진실이냐 캐묻는 자식의 물음에 알 수 없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 일어난 사건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짜깁기해 자식에게 전달한 수많은 날들. 그들과 함께 한 모든 날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자식으로 살 수가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살아온 지난 날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에, 나는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기에, 어떻게든 부모와 잘 지내보려 노력해왔다. 어느 순간 내가 반항 한번 하지 않고 버텨온 시간들이 결국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식의 사춘기는 부모를 키우는 시간이었던 것. 사춘기가 없었던 나는 이십대에 홀로 뒤늦은 사춘기를 보내면서도 부모에게는 반항하지 않았다. 나는 더는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를 모두 놓아버렸다.


도리를 하지 않는 나를 두고 부모는 자신들이 따로 돈을 해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집을 사라며 부모가 돈을 해줬는데 자신들이 해주지 않아 내가 화가 난 거라고 여겼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부모는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가 돈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왜 가난을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지 그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 난 나는 여전히 가야할 길을 알지 못한다. 내게는 자식을 키우는 일보다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수천 배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부모는 내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죽는 날까지 풀 수 없는 단단히 꼬인 실타래다. 여전히 부모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자신들의 아픔을 왜 알아주지 않느냐며 자식들을 다그친다. 부모를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부모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세상을 향해 글을 써도 되느냐고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자격이 되는가.


초월하고 싶었다. 인간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으로부터 벗어난 단단한 내면을 갖고 싶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장난 부분을 고치기보다 고장 자체가 나지 않는 초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타인의 부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다. 내것이 아니라며 슬슬 피한다. 나는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들의 아픔을 모두 껴안는 좋은 자식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의 노력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부모의 돈을 탐해 연락하지 않는 불효자식만이 남았다. 자식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그들은 관심이 없다. 그게 나의 부모다. 내가 이 단단히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아직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