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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29. 2021

공포가 된 미세먼지

아이들아 미안하고 미안해

엄마 코로나 오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겨우 일곱살 된 첫째가 아침을 먹으며 문득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러게. 그때 우린 마스크도 안 하고 사람도 편하게 만날 수 있었는데.


마침 오늘은 최악의 미세먼지가 예고된 날. 어제밤부터 심상치 않더니 아침부터 미세먼지 어플은 검고 검은 ‘최악’을 가리킨다.

엄마 미세먼지는 왜 생기는 거예요.

자동차를 너무 많이 타도 그렇고,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려도 미세먼지가 생겨. 우리가 쓰는 전기 중에 화력발전소라는 곳에서 생산하는 전기도 있는데 그 곳에서도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해. 물건을 만드는 공장도. 물건을 적게 사는 건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그럼 마트가 문제네.

엥 마트? 그래도 필요한 건 사야지. 마트가 있어야 필요한 걸 사지.

결론이 조금 이상하게 났지만 아침부터 씁쓸해졌다.


봄날이지만 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 개나리 철쭉이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피어나던 계절은 이제 없다. 좀 따뜻하다 싶으면 꽃망울들은 제각기 터지고 반가움도 잠시 우수수 꽃잎이 흩날린다. 이 모든 게 사월이 되기 전에 일어나고 있는 일.


지난주 만발한 제주의 벚꽃. 파랗던 하늘에 더 눈길이 간다.

둘째를 낳던 해, 일주일간의 병원생활과 일주일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 제주 시내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4월 둘째주였다. 올해 제주의 벚꽃은 이미 지고 있는 중. 코로나가 모든 이슈를 잠식해버린 해가 지나가고, 아직 코로나를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환경 문제가 엄습해온다.


한동안 선거마다 미세먼지를 어떻게 줄이느냐의 대처방안이 공약으로 꼭 등장하곤 했는데, 이번 보궐선거는 그 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지만 그 심각하던 미세먼지와 관련된 정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 때문에 습관처럼 쓰기 시작한 마스크라도 있어 다행인 걸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마스크를 제대로 쓸 수 있었을까. 코로나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공기청정기가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행여나 바깥놀이가 진행될까 염려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심코 열어본 화면에 보이는 숫자.

992, 237

공기청정기를 자주 사용하기에 저 숫자가 의미하는 심각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미세먼지 수치가 80만 넘어가도 맹렬하게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내뿜는 공기청정기가 아닌가. 그런데 992라니.

한 지인은 공포스럽다고 했다. 미세먼지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특히 아이들의 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속절없이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있다. 자신의 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다.


인터스텔라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옥수수밭 사이로 품어져 나오던 먼지들. 파란 하늘을 잃어버린 지구의 모습. 연신 기침을 해대는 배우들.


오늘은 집에서 생선을 구울 수 없다.

냄새나는 반찬도 만들 수가 없다.

따뜻하지만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도 없다.

그저 공기청정기 옆에 바짝 붙어있어야 하는 날.

아침부터 청정기를 가동하고 있는데도 미세먼지 수치가 50이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은 날.


인간에게 코로나가 더 위협일까. 미세먼지가 더 위협일까. 호주에는 사상 최악의 홍수가 났다는데, 올해 개화 시기는 관측 사상 가장 빨랐다는데, 지구가 더워질수록 더 많은 비가 내리고 더 센 태풍이 발생할텐데. 벌써부터 장마가, 태풍이 닥쳐올 여름과 가을이 걱정된다.


경제를 살리려면 소비를 해야하고, 소비를 많이 하면 환경이 나빠지는 악순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 우리는 어떤 소비를 하고 어떻게 환경을 지켜가야 할까. 생각만 많아지고 머리는 온통 오늘의 하늘처럼 뿌옇기만 하다.


황사가 지나간 중국의 하늘은 쾌청해졌다는데 이곳의 하늘도 내일이면 다시 본래의 색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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