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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24. 2021

곧 학교에 갈 너에게

12월이 된 지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 오늘에서야 너가 곧 여덟 살이라는 걸 깨달았어. 얼마전 취학통지서를 인터넷에서도 뽑을 수 있다는 문자를 받았어. 가만히 기다리면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해서 엄마는 기다리기로 했어. 우편으로 받으면 너가 곧 학교에 가는 게 더 실감날 것 같았거든.


그러고보니 입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못했네. 책상도 그렇게 사달라 했는데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어. 가방도 사야하고 필통도 사야하겠지.


넌 가끔 빨리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하지. 숙제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얼마전에는 또 그랬지. 나 공부하고 싶어. 근데 엄마가 안 시켜줘. 친구들은 다 공부한다는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갔어. 그래서 내가 물었지. 친구들이 공부한대? 응 공부하면 게임도 할 수 있대. 친구들은 공부가 재밌대? 아니 재미없대. 안 하면 혼나고 게임도 못하니까 해야한대. 현이는 공부가 하고 싶은 거야 아님 게임이 하고 싶은 거야? 흠… 공부도 하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어.


아직 휴대폰 게임을 해본 적 없는 너에게 엄마는 참 감사해. 유치원에서 방과후 시간에 게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을 때 엄마는 너무 놀랐어. 선생님께 확인해보니 유치원 행사와 연관된 게임이어서 아이들에게 하게 했다는 답변을 들었지. 그때 선생님이 엄마에게 묻더라. 현이 정말 게임 안 해요? 그 순간 깨달았어. 게임을 하지 않는 유치원생이 희한한 세상이라는 걸.


너는 몇 번 내게 물었지. 게임을 하면 안 되냐고. 동생도 있고, 하원 후 놀 수 있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아직은 좀더 활발한 놀이를 하기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아직 너에게 게임을 허락한 적이 없어. 너는 이런 엄마의 생각을 잘 들어줬지. 떼쓰지 않았고. 늘 고마워. 그럼에도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너의 마음을 엄마도 이해해. 엄마도 엄마가 잘 하고 있는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며칠 고민하다 엄마가 말했지. 놀이도 공부야. 공부도 놀이일 수 있고. 놀이를 통해서도 현이가 많은 걸 배우잖아. 부루마블을 통해서도 돈을 세는 법도 배우고 건물 짓는 것도 배웠잖아. 그게 다 공부야. 꼭 앉아서 퀴즈같은 걸 풀어야만 공부는 아니야. 넌 한참 골똘히 생각하더니 물었지. 공부가 안 되는 놀이도 있어? 있겠지. 게임은 공부가 되는 놀이야?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


공부라는 말을 너로 인해 다시금 곱씹어봐. 공부는 살면서 늘 해야 하는 당연한 것인데, 꼭 책이 아니어도 모든 삶의 순간순간 누구나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공부를 그저 제도교육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너무 한정짓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제도가 너무 답답해서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대학만 가면 안 해도 된다고, 마치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공부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속이고 있는게 아닌가. 공부의 의미가, 공부라는 단어가 가진 순수성이 너무 훼손된 게 아닌지, 엄마는 또 생각이 많아졌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너의 그 순수한 마음이 엄마는 참 소중해. 그 마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엄마가 도와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아무리 시골 혁신학교라 할지라도 결국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입시지옥이라는 오명 아래 있는 건 마찬가지일텐데. 그 안에서도 꿋꿋이 배움의 재미와 소중함을 느끼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엄마가 잘 도와줄 수 있을까.


엄마가 아직 너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은 건 두렵기 때문이었어. 너가 너무 일찍 공부를 싫어하게 될까봐. 아직은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워야 하는 네가 배움의 재미를 알기도 전에 배움에 지칠까봐, 엄마는 그게 두려웠어.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너가 그 공간에서 배움의 기쁨도 찾을 수 있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바랐어. 새로운 걸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을 학교에서 직접 깨닫기를 원했어. 학교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곳이니까. 그러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곳이니까.


엄마는 진심으로 너에게 공부가 놀이였으면 좋겠어. 놀이 안에서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면 공부가 얼마나 신이 날까. 놀면서 공부하면 공부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공부에 대한 너의 그 순수한 마음을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좋아하는 동요 알지. 꿈꾸지 않으면. 거기에 이런 가사가 나와.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엄마는 이 노래를 듣고 혼자 펑펑 운 적이 있어.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지난 날이 떠올라서. 여전히 배움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계속 차올랐지. 요즘도 가끔 이 노래를 들으면 엄마는 눈물이 고이곤 해.


너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엄마는 많이 흔들렸어. 조금씩 제도권 교육으로 다가가는 너를 그저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집단 광기처럼 교육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 속에서 너를 어떻게 길러야할지 암담해서. 그래서 많이 방황했어. 그러다 알게 됐지. 말도 안 되는 교육이 벌어지는 한국사회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너가 실력을 인정받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는 걸. 그 모순된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그토록 불안했다는 걸.


현아, 세상에 이렇게 해맑은 행복이 있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 사랑하는 현아. 너는 엄마는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를 살아가겠지. 엄마가 살아온 겨우 사십 년의 시간 속에서도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는데, 너가 살아갈 미래에는 가속화된 세상이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갈지 엄마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어.


어른은 과거의 사람이야. 과거의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틀에 갇히지 않아도 돼. 과거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아도 돼. 그 무엇도 영원히 옳은 건 없어. 너는 너만의 인생을 살아. 무엇이 되든 무엇이 되지 않든 자유롭게 너만의 미래를 그리며 살아.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아. 조금 뒤처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구나 각자만의 속도와 방향이 있는거야. 세상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억지로 너를 맞춰가지 않아도 돼.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게 꼭 옳은 건 아니야. 너만의 행복을 찾아가. 타인의 관점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너가 찾은 진짜 너만을 위한 행복. 그걸 찾아가. 그런 삶을 살아가. 너가 어떤 삶을 살든 엄마는 늘 너의 편이야.


사랑하는 현아,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을 나의 현아. 너는 점점 너만의 길을 가기 시작하겠지. 엄마보다 더 좋은 것들이 생겨나겠지.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또 엄마의 삶을 살아갈테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늘 여기에 있어. 언제든 와서 쉬었다 가도 돼. 그렇게 푹 쉬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또 너의 삶을 살아. 엄마는 여기 엄마의 삶을 살아가면서 너를 응원할게. 사랑해. 늘 하는 말처럼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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