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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an 15. 2023

세상 제일 재미있는 것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면 웬 빈말인가 하겠지만 진심이다. 공부가 너무 즐거워 하루가 더 길었으면 좋겠고, 이해력과 문해력이 급격히 향상돼 더 많은 책을 받아들이고 싶다. 책이나 영상에서 흥미로운 걸 접하면 아무나 붙잡고 관련 이야기를 마구 떠들고 싶어진다. 웬만하면 참지만 못내 마음이 흘러넘치는 날엔 아이들과 남편을 다짜고짜 붙잡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이 말이야..." "인간의 뇌가 글쎄..." 다행히 감사하게도 아이들과 남편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덕분에 신나게 대화를 하곤 한다. 설마 나만 만족스러운 건 아니겠지.


  얼마 전 첫째가 책을 읽다말고 내게 말했다. "엄마 과학이 너어무 좋아!" 마침 나도 과학 서적을 보던 중이었는데 나 역시 맞받아쳤다. "엄마도! 엄마도 과학이 정말 좋아!" 우리는 마주보고 빙긋 웃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대통령, 축구선수, 과학자 등 다양한 꿈을 말하던 아이가 얼마 전부터는 과학자가 가장 되고 싶다고 한다.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고, 생물학, 화학, 천문학, 물리학 등을 언급하며 그 중 자신은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이른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나는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과학에 대한 책을 자주 빌려온다. 그러면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과학이 참 좋다고 함께 말하던 그날, 첫째가 밥을 먹다 말고 내게 물었다. "엄마는 과학이 그렇게 좋은데 왜 과학자가 안 됐어?" "엄마가 학교 다닐 때는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나이가 들어서야 과학이 참 재밌다는 걸 알게 됐어." "아쉽다. 학교 다닐 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할 말이 많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게 모두 할 수는 없었다. 내게 학창시절은 그런 시간이었다. 많이 아팠고 크게 흔들렸던, 한동안 말로 꺼내는 것조차 힘겨웠던 시절. 그 당시 내게 공부는 처음에는 남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고, 나중에는 하나마나 한 쓸데없는 짓이었다.


  공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기관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독서를 해야겠다 싶었다.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시험을 볼 일도 없기에,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그때그때 관심사를 따라 책을 선택해 읽었다. 어떤 책은 휴식이었고, 어떤 책은 도전이었다. 휴식과 도전의 책을 번갈아 가며 읽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읽은 책들을 돌아보니, 어떤 일정한 결이 보였다. 관심사를 이것저것 막 넓히다가도 두드러지게 더 오래 머무는 분야가 눈에 띈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공부가 하나씩 있다고 믿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게 되는 분야, 관련 단어만 나와도 귀를 쫑긋하게 되는 과목. 재능보다는 재미가 사람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그걸 알아내고 따라가는 삶은 큰 축복이 아닐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공부는 과학일까, 역사일까. 다시 대학을 간다면 어떤 과를 선택할까. 인류학, 생물학, 사회학... 정말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다시 대학을 간다면 어떨까.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쳤다. 더 정확히는 행복했다.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즐겁게 지식을 탐구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동시에 마음이 복잡하다. 학창시절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학창시절의 나는 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내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지금의 나처럼 공부를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를 하는 좀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려면 나는 부모로서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 자신에서 아이들에게까지 옮겨간다.  


  갓난아기를 뒤집게 하는 건 뛰어난 운동신경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욕구라고 한다. 뒤집었을 때 보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이를 뒤집게 하는 것. 한 인간이 성장하는 걸 지근거리에서 목격하다보니,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욕망에 대해 자주 관찰하게 된다. 아이들은 세상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누구보다 넘쳐 흐른다. 살아가며 부딪히는 모든 세상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이런 아이들의 욕구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배움의 기쁨을 놓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까 고민이 된다. 앎의 기쁨이라는 가장 본능적인 욕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큼 충만한 삶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신의 관심사에 올곧게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다보니 자율성(Autonomy), 관계성(Relatedness), 유능감(Competence)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리더십 전문가인 수전 파울러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됐을 때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한다.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의지를 갖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관계성은 타인과 연결돼 사랑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 유능감은 배우고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다. 이는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 5단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감,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이런 욕구가 모두 만족될 때, 비로소 인간은 높은 동기부여를 유지하며 열정을 갖고 자신의 관심사나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내가 공부에 누구보다 진심인 것도 가만 들여다보면 이 욕구들이 모두 충족됐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자율적으로 읽고 쓰며, 안정적인 관계 속에, 하루하루 내 자신이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 대학만능주의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불안한 집안과 교우관계, 성장과는 동떨어진 일상을 살았던 학창시절과는 분명 대비되는 상태다. 결국 자신과 주변인,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편안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남들보다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상태에 놓인 게 참 감사하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이런 상태에 한번도 있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마흔이 넘어 간신히 알게 된 기쁨을 내 아이도 일찍 알기를 바라는 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삶은 나와는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좋은 건 빨리 알려주고 싶은 성급한 마음이 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의 나를 그저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 한 가지뿐이겠지. 글자에서든 삶에서든 역시 공부는 내 안에서 온전히 소화하고 느껴야 비로소 완성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걸 이제야 찾았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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