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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an 01. 2023

행복할 용기

  요즘의 나는 지속적인 행복의 상태에 빠져있다. 시작점이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 주 혹은 몇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가족들 중 특별히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픈 사람이 없고, 당장 나를 재촉하는 부담스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 눈을 떠 네 식구 아침을 먹고, 남편은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나는 카페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늦은 오후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고 남편도 귀가하면 다시 네 식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다.


  일상이 행복하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투닥거리고 남편과도 가끔 서로 눈을 흘기지만, 솔기 하나 없는 포근하고 편안한 옷 안에 몸을 집어넣은 것처럼 나의 일상은 내게 참 잘 맞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서로 다투긴 해도 치고받고 싸울 정도로 폭력적이지 않으며, 사춘기가 오기 전이라 여전히 부모를 크게 신뢰하고 듬뿍 사랑을 표현한다.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관심사를 따라 책을 넘기고 놀이를 한다. 나는 크게 벗어나는 행동만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사랑은 늘 넘치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이전의 나는 행복한 순간에 놓여있어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 포근한 햇살이 거실 창으로 깊게 드리운 어느 오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 자 한 자 읽다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다. 새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가운데 길냥이들이 마당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온화한 가을의 공기가 창을 통해 실내로 서서히 밀려들던 그 순간 불현듯 알아챘다. 나 행복하구나, 이 순간이 행복이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왔다. 큰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가며 행복이라 느끼는 그 순간이 폭풍전야라 여겨진 것. 혹여 불행으로 가는 길목이라 이렇게 고요한 건 아닐까. 내가 행복을 누려도 되나. 나는 정말 행복한가. 나는 행복을 만끽해도 되는 사람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다가온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스스로 행복을 박차고 걸어나갔다. 나는 왜 행복을 그저 받아들이지 못할까. 무엇이 그리 불안한 걸까.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날 SNS  자신을 향한 짧은 글을 적었다. “행복을 그저 누려도 . 그저 만끽해도 괜찮아.” 그날 알게  , 나는 너무 오랜 시간 행복을 나와는 거리가 , 내가 차마 만질  없는 신기루쯤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간절히 행복을 바란 적이 없어서일까.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행복을 배운 적이 없어서일까. 나는 행복이 다가와도 누릴  모르는 사람이었다. 행복이 혹시 불행으로 가는 전초일까봐, 행복이 다가와도  순간을 만끽하지 못하고 겁쟁이처럼  것이 아니라며 밀어냈던 것이다. 행복은 모두가 누릴  있는  아니었다. 준비된 사람만이 행복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든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이상 겁쟁이가 되지 않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행복은 불행으로 가는 다리가 아니라고, 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삶의 찰나들일 뿐이라고. 행복은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그 짧은 찰나들을 더 자주 만들고 그 순간을 그저 만끽하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불행과 한 몸이 된 채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받은 어린 날의 나를 끄집어내 하염없이 어루만졌다. 행복할 자격이 내게도 있다고. 더는 불안해하지 말라고.


  삶이란 마치 바다와 같아서 궂은 날엔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집채만한 파고에 꼼짝없이 휘말리기도 하고,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이 없는 날엔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 위를 그저 유영할 때도 있다. 언제 다시 폭풍우가 몰아칠까 미리 겁내지 말고, 지금의 잔잔함에 그저 몸을 맡긴 채 평화로움을 온몸으로 느끼자고, 나는 그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짐했다. 불행에 맞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행복 역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이후 나는 더는 겁내지 않았다. 행복은 커다란 무언가를 성취한 뒤에 오는 게 아니었다. 불행을 함께 몰고 오지도 않았다. 특별하게 아픈 곳이 없다면 건강한 상태이듯, 큰 괴로움이 없는 일상이 곧 행복이었다. 나는 내 머릿속 사전에 행복의 동의어로 무탈함을 적어넣었다. 무탈한 일상이 곧 행복이라 마음 먹으니, 그 후로 나는 자주 행복감에 젖은 상태가 되었다.


  한번씩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불편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지만, 이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무리 삶이 나를 괴롭혀도 나는 다시 내면의 힘으로 바로 선다. 먼훗날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굳이 끄집어내 아파하지 않는다. 길을 잃으면 책에서 길을 찾고 마음이 흔들리면 글을 쓴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별 일 없는 일상 속에서 매일 올려다보는 하늘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걸로 충분하다. 삶은 이토록 단순한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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