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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20. 2022

엄마의 빅픽처

"엄마, 밥 차리기도 귀찮은데 우리 시켜먹을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게 여섯 살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어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벌써 알고 있구나. 엄마가 밥 하는 걸 귀찮아한다는 걸. 엄마의 가장 큰 짐이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는 걸. 너를 위한 밥이고 나를 위한 밥인데, 나는 왜 이렇게 밥을 차리는 것도 먹는 것도, 짐 같기만 할까.


    때운다는 말처럼 산다. 아침에는 대충 시리얼이나 빵으로 때우고, 점심은 카페에서 손님 몰래 먹어야 하니 냄새가 나지 않고 간편한 것들로 주워 먹는다. 저녁은 길게 요리하는  좋아하지 않아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삼십 분에서  시간 정도면 만들  있는 것들로 식탁을 채운다. 조리 시간이  음식은 어쩌다   정말  마음을 먹고 특별히 날을 잡아서 한다.


  한때는 먹을 것에 집착해 살이 쪄서 문제가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내게 먹는 것은 그리  기쁨이 되지 못한다. 너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어야겠다 싶은 것도 없다. 그저 있는 , 보이는  주워 먹는다. 먹는  중요하다는   안다. 내가 보고 듣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정의하듯, 내가 먹는 것들이 결국  건강을 좌우한다는   안다. 그럼에도  먹는  내게  어렵기만 하다. 먹는 것에 관심이 가지 않으니 밥상을 차리는 것도 내게는 곤욕이다.


  결혼한   년이 넘었다. 신혼 때를 제외하고는  이런 상태였으니  오랜 시간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밥을 차리기 싫어하는 아내이자 엄마라니, 자격미달의 사람인 것만 같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음식을 하는 어머니들을 관찰하며 글도 여러  썼다. 그분들이 그리 공을 들여 음식을 하는 이유가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는 그렇게   없기에. 결국 그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음식이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냈다. 나는 음식이 아닌 다른 행위로 존재 가치를 알릴  있기에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밥을 차리기 싫어하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죄스럽기만 하다. 원인을 파고 판다. 대체  이럴까.  먹어야 몸도  힘이 나고 일상도  건강하게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음식을 하는  끝없는 반복의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의 끼니는 너무나 빨리 닥쳐오고, 살기 위해 먹는  세끼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는  과정은, 먹는 시간에 비해 훨씬 길고 지루하다.


  타고난 기질인지 나는 지나친 반복을  견디지 못한다. 눈과 손이 빠른 편이라 일을 빨리 배우는 편인데 그렇게 빨리 배우면 일을 잘할  같지만, 오히려 싫증이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그런  기질 때문에 이십 대때 직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복이 아닌 일이 있을까. 처음엔 낯설고 어려워도 결국 익히고 나면 익숙해져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가.  반복 속에서도 다름을 알고 의미를 찾아야 지속할  있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글쓰기가  적성에 맞는 , 반복이지만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얀 종이 앞에 앉으면 설레는 동시에 두렵다.    있을까.  하나의 글을 완성할  있을까. 물론 음식도  새로운 메뉴를 선정해 도전한다면, 지루함에 빠지지 않고 의미를 찾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쓰면 남는 글에 비해 아무리 정성껏 차려도 결국   먹으면 끝나 버리고,  다른 끼니를 챙겨야 하기 때문일까.


  요리연구가인 이모가 있다.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전업주부였던 이모는, 뒤늦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요리연구가가 됐다. 이모는 거짓말 조금 보태  세계 요리를   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리고 요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전수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번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는 음식 하는  귀찮지 않아요. 이모가 대답했다. 하는 과정을 즐겨야 . 그래야 계속할  있어. 그러고 보니 나는 요리하기 위해 내는 시간 자체를 아까워하고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사전을 들춰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은데 말이다.


  실은 요즘 남몰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얻어먹는 밥상. 아이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고 조금만  크면 자신이 요리해주겠다고 자주  소리를 치곤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으레 하는 말이려니.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건 분명 기회다. 짐을 나눠들  있는 절호의 찬스. 남편은 요리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같으니, 아무래도 내가  과제를 빨리 털어버리는 길은 그것뿐인  같다. 아내라고, 엄마라고 해서  요리를 좋아할 수는 없다.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고  자신을 이해해보려 한다.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아니니까. 우리는 가족이고 청소나 정리가 그렇듯, 밥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니. 부디 얼른 커서 엄마의 밥을 부탁한다. 재료는 엄마가 대줄게.    하나라도 요리를 좋아해야  텐데. 제발.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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