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 차리기도 귀찮은데 우리 시켜먹을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게 여섯 살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어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벌써 알고 있구나. 엄마가 밥 하는 걸 귀찮아한다는 걸. 엄마의 가장 큰 짐이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는 걸. 너를 위한 밥이고 나를 위한 밥인데, 나는 왜 이렇게 밥을 차리는 것도 먹는 것도, 짐 같기만 할까.
한 끼 때운다는 말처럼 산다. 아침에는 대충 시리얼이나 빵으로 때우고, 점심은 카페에서 손님 몰래 먹어야 하니 냄새가 나지 않고 간편한 것들로 주워 먹는다. 저녁은 길게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면 만들 수 있는 것들로 식탁을 채운다. 조리 시간이 긴 음식은 어쩌다 한 번 정말 큰 마음을 먹고 특별히 날을 잡아서 한다.
한때는 먹을 것에 집착해 살이 쪄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내게 먹는 것은 그리 큰 기쁨이 되지 못한다. 너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꼭 먹어야겠다 싶은 것도 없다. 그저 있는 걸, 보이는 걸 주워 먹는다.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내가 보고 듣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정의하듯, 내가 먹는 것들이 결국 내 건강을 좌우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잘 먹는 건 내게 늘 어렵기만 하다. 먹는 것에 관심이 가지 않으니 밥상을 차리는 것도 내게는 곤욕이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신혼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이런 상태였으니 꽤 오랜 시간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밥을 차리기 싫어하는 아내이자 엄마라니, 자격미달의 사람인 것만 같다. 오랜 시간을 공 들여 음식을 하는 어머니들을 관찰하며 글도 여러 번 썼다. 그분들이 그리 공을 들여 음식을 하는 이유가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결국 그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음식이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냈다. 나는 음식이 아닌 다른 행위로 존재 가치를 알릴 수 있기에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밥을 차리기 싫어하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죄스럽기만 하다. 원인을 파고 판다. 대체 왜 이럴까. 잘 먹어야 몸도 더 힘이 나고 일상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음식을 하는 건 끝없는 반복의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의 끼니는 너무나 빨리 닥쳐오고, 살기 위해 먹는 그 세끼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는 전 과정은, 먹는 시간에 비해 훨씬 길고 지루하다.
타고난 기질인지 나는 지나친 반복을 잘 견디지 못한다. 눈과 손이 빠른 편이라 일을 빨리 배우는 편인데 그렇게 빨리 배우면 일을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싫증이 금방 나 곧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그런 내 기질 때문에 이십 대때 직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복이 아닌 일이 있을까. 처음엔 낯설고 어려워도 결국 익히고 나면 익숙해져 반복적으로 하는 게 일이 아닌가. 그 반복 속에서도 다름을 알고 의미를 찾아야 지속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글쓰기가 내 적성에 맞는 건, 반복이지만 쓸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얀 종이 앞에 앉으면 설레는 동시에 두렵다. 잘 쓸 수 있을까. 또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물론 음식도 늘 새로운 메뉴를 선정해 도전한다면, 지루함에 빠지지 않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쓰면 남는 글에 비해 아무리 정성껏 차려도 결국 한 끼 먹으면 끝나 버리고, 또 다른 끼니를 챙겨야 하기 때문일까.
요리연구가인 이모가 있다.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전업주부였던 이모는, 뒤늦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요리연구가가 됐다. 이모는 거짓말 조금 보태 전 세계 요리를 할 줄 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리고 요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전수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한 번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는 음식 하는 거 귀찮지 않아요. 이모가 대답했다. 하는 과정을 즐겨야 돼. 그래야 계속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나는 요리하기 위해 내는 시간 자체를 아까워하고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사전을 들춰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은데 말이다.
실은 요즘 남몰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얻어먹는 밥상. 아이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고 조금만 더 크면 자신이 요리해주겠다고 자주 큰 소리를 치곤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으레 하는 말이려니.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건 분명 기회다. 짐을 나눠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남편은 요리에 영 관심도 재능도 없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내가 이 과제를 빨리 털어버리는 길은 그것뿐인 것 같다. 아내라고, 엄마라고 해서 꼭 요리를 좋아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고 내 자신을 이해해보려 한다. 꼭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가족이고 청소나 정리가 그렇듯, 밥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니. 부디 얼른 커서 엄마의 밥을 부탁한다. 재료는 엄마가 대줄게. 두 명 중 하나라도 요리를 좋아해야 할 텐데. 제발.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