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글쓰기 모임을 하고
글쓰기모임 17. 글을 한데 묶어 저장하면서 17이란 숫자를 적어 넣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쓴 글이 어느덧 열일곱 번째가 된 것이다. 봄 한복판에 시작한 모임이 겨울 한복판으로 넘어왔다. 한 달에 두 편의 글을 쓰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제시한 글감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글에 녹여 펼쳐 보인다. 그리고 함께 모여 글에 대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때로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한다. 글을 매개로 우리는 더 깊은 서로의 삶을 들여다본다.
가장 오래된 멤버 하나가 모임 말미에 이렇게 전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제가 단단해졌대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유하고 글을 써온 멤버였다. 그녀의 첫 글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글을 보기 전에 내가 알던 그녀는 누구보다 밝게 웃고 사람을 좋아하는 해맑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첫 글은 예상과 달리 너무나 어두웠다.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잘 쓰고픈 욕망과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망설임이 더해져 있었다. 열일곱 번의 글을 쓰는 동안 그녀는 달라졌다.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정말 단단해졌어요." 그녀는 글을 쓰면서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갔다.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갔다. 이제는 글을 쓰며 망설이지 않는다. 잘 쓰면 잘 쓴 대로, 못 쓰면 못 쓴 대로, 자신이 솔직하게 느끼고 닿은 부분까지 글로 옮겨놓는다. 누구보다 글감에 대해 탐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 한다. 글을 쓰다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 글을 완성한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순간들과 하나씩 하나씩 화해를 한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누구보다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웃음 안에는 거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의 글을 읽으며 방향키가 되어주려 노력한다. 사유가 좀 부족하면 조금 더 고민해 보라 말해주고, 에피소드가 모자라면 더 과거를 뒤져보라 조언한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어하면 짐을 덜어주고, 글을 쓰면서 자라난 앎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책을 함께 찾는다. 그녀는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아직 단단해지는 중이지만 더 단단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에 그녀는 쓰다 만 글을 다시 꺼내어 완성했는데, 이후 홀가분해졌다고 한다. 완성의 기쁨도 한껏 누리는 모습이었다.
타인에게 단단해졌다는 평을 들은 데다 스스로도 단단해졌음을 느낀다는 말에 마음이 더없이 촉촉해졌다. 모임을 끝내고도 '단단해졌다'는 다섯 글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아주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하루하루의 사유와 하나하나 써내려가는 내 글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타인의 생각을 곱씹으며, 더 단단해지려 더 유연해지려 애를 썼다. 그렇게 내가 단단해졌기에, 흔들리는 누군가도 나와 함께 글을 쓰며 단단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게 결국 글쓰기 모임을 여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모임을 하기 전 마음이 들뜬다. 이른 아침 카페로 나와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훈훈하게 덥히고, 커피 내릴 물을 끓이고,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고 인쇄한 글을 올린다.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과 가볍게 근황을 이야기하고, 이내 서로의 글로 함께 걸어 들어간다. 글 하나를 함께 끝내고 나면 다음 글감을 정하고, 다시 그 글감을 통해 각자의 삶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고,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나의 모습을 꺼내 보이게 된다.
단단해졌다는 말에서 벅찬 희망을 마주한다. 글을 함께 쓰는 일이, 분명 사람과 세상을 정화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지난날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디딘 땅을 세차게 밟으며 더 열심히 이 길을 걸어가겠노라 다짐한다. 멤버에게 함께 단단해지는 동시에 유연해지자고 말했다. 단단해지기만 하면 자신이 가장 옳다는 생각에 한 순간 부러질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것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겸손한 마음과 내가 깨달은 건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함께 가져가자고. 약속과 동시에 나는 나를 믿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나부터 더 단단해지고 더 유연해지리라 마음을 먹는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옳은 길이 되도록 나아가리라. 다음 글감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