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글이 있다. 잊을 수 없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 써온 글이 수백 개를 넘고 나니 어떤 글은 제목도 흐릿하고 읽어보면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 새삼스러운데, 어떤 글은 제목도 내용도 켜켜이 내 안에 새겨지듯 남아있다. 쓰면서 온 마음을 다하고, 쓰고 나서도 자꾸 밟혀 숨겨놓은 보물 마냥 꺼내보고 또 꺼내보았던 그런 글. 마음은 전해지는 걸까. 감사하게도 그런 글은 독자에게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가난을 선택한 삶>이다.
얼룩소의 새 기능으로 내 이름 아래에는 꼬리표처럼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글 세 개가 따라붙게 되었다. 그 중 두번째 글이 바로 <가난을 선택한 삶>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제목을 단숨에 정할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가난을 선택했다'는 문장이 내 뇌리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장보다 더 투명하게 지금의 내 삶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따뜻한 주말 오후였고, 곁에서 아이들이 끝없이 재잘대는데도 나는 꼼짝없이 앉아 휴대폰으로 이 글을 썼다. 뭔가에 홀린듯 적어내려갔다.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윤석열 당선인께>는 어느 오후 밥을 하다말고 서서 앉아서 휴대폰으로 역시 미친듯이 써내려간 글이다. 퇴고가 무척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일필휘지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이런 순간을 만난다는 건 사실 행운 같은 일이다.
당시는 운좋게도 내 글이 얼룩소 메인에 자주 걸리던 때였는데, <가난을 선택한 삶>은 에세이였기에 메인에 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올린 지 며칠이 지나고 얼룩소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내 글이 탑에 걸렸다고. 탑에 걸릴만한 글을 적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들어가보니, 작은 시골집 사진과 함께 게시된 이 글이 눈에 띄었다. 반사적으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저게 왜 저기 있지. 내 글이 어딘가에서 가장 탑에 오른다는 건 분명 짜릿한 경험인데, 이날은 기분이 묘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잔뜩 들어간 에세이였기에, 여기는 공론장이었기에, 대체 이 글을 왜 올렸을까 하는 의문이 한가득이었다. 금세 끌어내려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 글은 메인에 열흘을 머물렀다. 타인의 글 대신 내 글만 특혜를 받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좀 불편했다.
가난을 선택했다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에, 좋은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보니 좋아요수가 폭발했다. 얼룩소에 들어올 때마다 새 답글이 달려 있었다. <윤석열 당선인께>는 당시 워낙 큰 이슈였던 집무실 이전에 대한 글이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 글은 왜 그렇게 반응이 많은지 좀 의아하기도 했다. 중간에 얼룩소를 탈퇴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한 게 이 글에 달린 답글들 때문이었다. 삶에 대해 돈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마다의 고민을 나누는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달린 글들을 외면하고 내 이름을 차마 지울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내 글과 답글들을 읽으며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당시 나눴던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구나.
<가난을 선택한 삶>은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묶은 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글은 매일 쓰지만, 기획력이나 한데 묶는 능력이 말짱 꽝인 내가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책을 묶어보았을 때, 제목을 뭘로 정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이 글이 떠올랐다. 사실 이 글은 동서문학상 수필 부문에서 참가상 격인 맥심상을 받기도 했다. 얼룩소의 글은 건드리지 않은 처음 그대로이고, 퇴고한 버전으로 제출한 글이 운좋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처음에는 참가상에 그친 게 아쉬워 의기소침해 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수 천 개의 작품 중에 백여 개 안에 든 것이니 분명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카페 주인이 맥심 커피를 부상으로 받아, 이따금 인스턴트 커피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상장은 남사스러워서 한쪽에 처박아두었다.
글 하나로 작지만 상도 받고, 브런치북도 엮고, 진심어린 수많은 답도 받았으니 이 정도면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구나 싶다. 내 이름에 꼬리표처럼 달린 글을 보며 생각이 많아져, 괜히 욕 먹을 자랑같은 글을 써본다. 습관이 되어 매일 글을 쓰지만, 종종 두렵기도 하다. 내가 써놓고도 잊고 마는 글이 있다보니, 혹여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했던 이야기를 또 꺼내는 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너무 오래 해온 것일수록, 꺼내놓으면 처음인데도 낯설지가 않아 중복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끈거릴 때가 있다. 내가 정리하지 못하는 게 비단 살림살이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을 정리할 시점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 글도 마무리가 안 되는데, 수백 개의 글을 정리해야 한다니. 앞으로도 매일 글을 쓸텐데, 그것들은 또 어떻게 정리하지. 우선 이 글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